'주가 발목 잡는다' 비판에 억울한 연기금… 업계선 "5~6월까지 계속 팔 수도"

입력
2021.02.07 20:30
18면
연기금, 29거래일 10조 순매도 '기록'
'꽉찬' 국내 주식 비중에... "계속 판다"
"과거 개미들 팔 동안 사들인 결과" 지적도

국내 증시 '큰 손'인 연기금이 최근 한 달 사이 코스피에서만 10조원어치 이상을 순매도하고 있다. 지난 5일까지 무려 29거래일 연속 '팔자' 행진 기록도 새로 썼다. 코스피가 3,000선을 다시 내주는 과정에서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매도 랠리가 부각되자,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누구를 위한 연기금이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과연 연기금은 주가 상승 속 제 잇속만 챙기는 '얄미운 공룡'인걸까. 업계에선 "쏟아지는 비난이 연기금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한 달 새 10조 던진 연기금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해 12월 24일 이후 올해 2월 5일까지 '29거래일 연속 순매도' 신기록을 세우며 이 기간 코스피에서만 10조원을 팔아치웠다. 이는 같은 기간 기관이 코스피에서 순매도한 물량(19조2,000억원)의 절반에 달한다.

이로써 연기금은 지난 2009년(8월 3~9월 9일) '28거래일 연속 순매도' 기록을 넘어섰다. 순매도액도 당시(약 2조6,000억원)의 4배나 더 많다.

반대로 최근 한 달 새 코스피에서 23조5,000억원을 사들인 개미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온다. 연기금이 코스피 상승 랠리를 발목잡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정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선진국보다 저평가돼 있는 국내 주식을 국민연금이 이렇게 내다팔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최근엔 '연기금은 증시 대세상승을 막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올 정도다.


11년간 50조원 사들여... 연기금이 "지수 떠받쳤다" 목소리도

최근 기록적인 연기금의 매도세는 우선 기계적인 대응 성격이 크다. 자산 운용 규모가 큰 연기금은 대개 주요자산별 투자 비중을 미리 정해놓고 움직인다. 가격이 올라 특정 자산의 비중이 커지면 그 자산의 일부를 애초 비중에 맞춰 매도하는 식이다.

실제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 계획에서 국내 주식 비중은 지난해 17.3%였는데, 코스피가 가파르게 상승한 결과 이 비율은 지난해 11월 기준 19.6%까지 늘었다. 증권업계는 "국민연금과 달리 이 비율을 공개하지 않는 다른 연기금도 (국민연금과)비슷한 수준으로 국내 주식 비율이 증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올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는 16.8%로 더 낮아졌다.

지난 10여년 간 연기금이 국내 주식을 사들인 규모를 보면, 최근 매도세는 규모가 크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연기금은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코스피에서만 약 51조원을 순매수했다. 이 기간 연기금이 순매도에 나선 해는 증시 호황기로 불리던 2017년과 2018년, 지난해 등 세 차례에 불과하다.

반대로 개인은 지난해 47조원이란 역대급 순매수를 기록하기 전인 2019년까지 10년간 무려 53조원을 내다 팔았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과거 개인이 주식시장을 외면했을 때 기관투자가가 지수를 보완한 측면이 있다"며 "그 동안 주식을 너무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정리하는 차원으로 해석해야지 이를 개미와의 대결 구도로 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연기금의 순매도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이후 연기금의 순매도 규모가 컸던 건 사실이나, 2008~2009년 대비 주요 연기금의 총 자산이 2배 이상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추가 매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상황"이라며 "내년 자산배분 목표 비중이 공개되는 5~6월까지 연기금 매도세는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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