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애절한 눈빛으로 장미를 건넨다. 무장 경찰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다. 5일 오후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의 법원 앞 풍경이 카메라 렌즈에 담겼다. 시민들은 전날 거리에서 쿠데타 반대를 외치다 경찰에 붙잡힌 4명의 석방을 호소했다.
비슷한 장면은 다음날 제1도시 양곤에서도 나왔다. 쿠데타에 반발해 6일 시민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진압 경찰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그들의 가슴과 방패에 시민 여러 명이 장미 다발을 달아주거나 꽂는다.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찍힌 두 장의 사진은 어우러지고픈 부조화다. 불안 속 안심이다.
미얀마인들은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첫 주말인 6, 7일 잇달아 거리로 나섰다. '야밤 냄비 두드리기→사회관계망서비스(SNS) 불복종→대낮 소규모 시위'에서 대규모 거리 집회로 쿠데타 반대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래도 비폭력 저항 기조는 유지하고 있다. 열정과 냉정의 균형이다.
7일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양곤에선 군부의 쿠데타를 반대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가 전날부터 이틀 연속 열렸다. 만달레이와 군부 심장인 수도 네피도 등에도 수천 명이 모였다. 이들은 "군부 독재 반대" "민주주의 회복" "아웅산 수치에게 자유를" 등 구호를 외쳤다. 이에 군부는 전날 오전부터 시민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모든 SNS와 인터넷을 막았고, 이날 오후 들어서야 인터넷 접촉 차단을 풀었다.
특히 인터넷이 끊긴 다음날인 7일 양곤에선 수만 명(일각에선 약 10만명)이 거리에 나와 행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승려가 주역이었던) 샤프론 혁명 이후 최대 규모"라고 로이터통신 등은 전했다. 다행히 물리적 충돌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이날 오후 늦게 연락이 닿은 양곤 거주 교민은 한국일보에 "사람들 수가 계속 늘고 무장 경찰도 많아지고 있지만 충돌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쿠데타 발생 일주일간 미얀마 국민은 전 세계에 비폭력 저항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각 가정은 1988년 민주화 운동인 '88항쟁'을 기억하며 2일부터 매일 밤 8시 냄비 등을 두드렸다. 자동차는 경적을 울렸다. 대학생과 직장인들은 빨간 리본을 가슴에 달고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들었다. 집과 거리엔 빨간 셔츠와 빨간 풍선이 매달렸다. 시민과 경찰의 신경이 극도로 날 선 시위 현장엔 장미가 등장했다. 빨간색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속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당 색깔이다.
미얀마 국민의 비폭력 저항은 과거 여러 차례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다. 정치적 판단도 따른다. 이병수(55) 미얀마한인회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물리적 충돌은 국가 비상사태 선포 등의 빌미가 돼 군부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수치 국가고문 역시 쿠데타 직후 국민들에게 "비폭력을 통한 시민 불복종"을 역설했다.
이날 늦게 양곤 동쪽으로 400여㎞ 떨어진 태국 접경 지역 미야와디에서 경찰의 시위 해산 과정 중 총성이 울렸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으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치 고문의 경제자문역으로 활동한 숀 터넬 호주 매쿼리대 교수가 쿠데타 이후 외국인으로는 첫 구금된 상태라고 외신에 밝히면서 외교 갈등도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