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말고 '복지부총리' 어때요?

입력
2021.02.08 04:30
26면


한국에서 복지 논의란 늘 '다람쥐 쳇바퀴'다. 헬조선 탈출 위해 북유럽을 배우자 → 나라가 남미 꼴 난다 → 뭔가 사건 하나 터진다 → 돈도, 사람도, 컨트롤 타워도 없다 → 역시 북유럽 복지다 → 덮어놓고 퍼주다 거지꼴을 못 면한다 → 좌파 포퓰리스트들이 돈으로 표 사다가 나라를 북한에다 갖다 바치는 꼴을 국민이 가만 둬선 안 된다 → 다시 또 뭔가 사건이 하나 터진다 →…

그러니 김용균법, 중대재해법, 연초 한국일보 보도로 널리 알려진 방배동 모자의 비극, 정인이 사건 같은 이슈들이 한바탕 휘몰아쳐 지나고 나면, 이 사안들을 우리 사회가 소비하는 방식에 의문점이 남는다. 혹시 죄책감도 덜고 정의롭고도 싶은 중산층의 알리바이인 건 아닐까. 사람이 먼저라고 까불더니 막상 너희들도 별 수 없지, 그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미 오래 전 키워드가 있었다. 동사무소와 복지부총리.

동사무소란, 디지털화로 서류 작업 중심의 행정 수요가 줄어들 테니 동사무소를 복지행정의 일선 기지로 쓰자는 제안이다. 그 얘긴 지난해 12월 28일자 칼럼 ‘주민센터로 오세요’가 있으니 패스.

다만 이 때도 ‘복지의 자격’을 따지느라 모욕을 더러 주는 모양이다. 화분에 물을 충분히 준다는 건 어느 정도 넘치게 준다는 말인데, 넘치는 순간 우리나라는 ‘남미 꼴’로 직행할 예정이라는 게 걸림돌이다. 그 덕분에 정말 위기의 끝자락에 놓인 이들에게 우리 복지는 ‘있는 동시에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다는 한탄을 듣곤 한다.

다른 하나는 복지부총리. 사건이 터지면 '처벌강화 같은 대증요법보다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아래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들 합창한다. 어찌나 단련됐는지 저 문장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기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읊을 수 있을 정도다.

관료제에서 컨트롤타워란 대개 차관 위 장관, 장관 위 총리라는 식의 ‘한 끗’ 높은 직책을 뜻한다. 멀리 갈 것 없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대본, 중수본, 중대본 3단 구조는 ‘관료제에서 한 끗 차이란 무엇인가’를 웅변한다.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기 대책이란 곧 돈이다. 부모께 효도하고 아이 잘 키우는 게 그저 사랑이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말이다.

그러니 ‘사회부총리’라는 타이틀을, 교육부 말고 보건복지부에다 주면 어떨까. 아니 아예 경제부총리 말고 복지부총리를 해보면 어떨까. 뻔한 살림에 뻔한 결론이 나온다 해도 '재정 때문에 안 돼’에서 ‘어떻게든 해볼 방법을 찾아보자’는 방향으로, 생각의 출발점이라도 조금 이동하지 않을까. 경제는 그 잘났다는 자유시장더러 제발 알아서 하라 그러고 말이다.

곳간열쇠 꽉 움켜쥔 심술쟁이 시어머니 같은 역할을 폄하하거나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인력과 예산과 컨트롤타워는 앞으로도 계속 부족하거나 없을 예정인 것 같아 하는 얘기다. 다른 일엔 전체주의를 척척 잘만 가져다 붙이더니, 자영업자 등의 손실보상 문제는 모른 척 하려는 전체주의의 또 다른 얼굴에 대해선 일제히 딴청 피는 풍경이 신기해서 하는 얘기다. 수사와 기소 분리도 관철 못 시킨 검찰개혁보다, 복지부총리제라도 했다면 세칭 ‘진보정권의 효능감’에 조금 더 도움되지 않았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마침 대선도 있으니, 이번엔 “경제 말고 복지부총리!”를 정치권에 요구해보면 어떨까.

조태성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