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5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올해 초 출범한 바이든 미 행정부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산업부에 따르면 유 본부장은 WTO에 사무총장 후보직 사퇴를 통보할 예정이다. 유 본부장은 긴급브리핑을 통해 "차기 (WTO) 사무총장에 대한 회원국들의 컨센서스(의견 만장일치)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우리 굳건한 동맹국인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과 합의를 거쳐 후보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WTO는 지난해 사무총장 선출을 위해 총 3차례의 선거 라운드(회원국 협의)를 진행, 지난해 10월18일 최종 선거 라운드에서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나이지리아 후보가 WTO 회원국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전 미 행정부가 WTO 사무총장 후보로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사무총장 선출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사무총장 선출은 회원국 간 컨센서스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유 본부장의 중도 사퇴는 미국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 본부장은 그 동안 WTO 차기 사무총장 선출에 대한 컨센서스 도출을 위해 미국 등 주요국과 협의를 진행했다. 유 본부장은 이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차기 사무총장 후보와 관련, 부정적인 입장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동맹국과 협력체제에 방점을 찍어 온 바이든 정부가 WTO 회원국 다수의 지지를 얻어낸 응고지 후보를 지지할 것이란 관측은 적지 않았다. 한 통상 전문가는 “축구장에 야구선수(응고지 후보)가 경기하러 왔다고 할 정도로 통상 전문성 면에선 유 본부장이 압도적으로 앞섰다”면서도 “하지만 응고지 후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재무부 장관으로 유력한 자넷 앨런과 친구 사이일 정도로 인맥과 국제적 위상 등에서 유리했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의 이날 사퇴로 조만간 WTO 회원국 간 컨센서스를 거쳐 차기 사무총장에 응고지 후보가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WTO 역사상 첫 여성 사무총장이 탄생하는 셈이다. 아울러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첫 사무총장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응고지 후보는 나이지리아에서 재무장관과 외무부 장관을 지낸 최초의 여성 공직자다. 1970년대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응고지 후보자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대학원에서 지역경제 개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 정부는 유 본부장의 사무총장 후보직 사퇴에도 WTO에서 다자무역체제의 복원‧강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앞으로 WTO 개혁‧디지털경제‧기후변화 등을 포함한 전 지구적인 이슈의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향후 사무총장 선출 관련 향후 일정은 WTO 일반이사회 의장이 회원국과 협의 후 공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