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에 돌아오게 돼 기쁩니다.”
2014년 한국 팬들 앞에서 다시 공연하게 된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는 주름 가득한 특유의 밝은 미소로 이렇게 인사했다. 한국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자신의 성이 코리아(Corea)여서 했던 농담이었는데 이듬해 다시 내한공연을 할 때도 그는 변함없이 ‘안녕, 나의 나라!’라고 인사를 건넸다. 한국을 늘 ‘내 나라’라 부르며 여러 차례 다녀갔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탬파베이 자택에서 자신의 밴드명 '리턴 투 포레버(Return to Forever)'처럼 영겁의 세계로 떠났다. 향년 80세.
고인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지난해 10월 공연을 열고 최근까지 뉴욕필하모닉이 초연할 트럼본 협주곡을 작곡하고 있었을 정도로 음악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는 최근에서야 희귀 암이 생긴 것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11일 고인의 사망을 알리며 그가 생전에 남긴 글 중 “음악이 환하게 타오르도록 나와 여정을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어디서든 창작의 기쁨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고 그로 인해 내 삶은 풍요로웠다”는 글귀도 있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코리아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네살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스물을 갓 넘긴 1960년대 초부터 스탄 게츠, 허비 만, 블루 미첼 등 유명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1966년 데뷔 앨범을 낸 뒤 2년 뒤 명반 ‘Now He Sings, Now He Sobs’를 남겼고, 재즈의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 멤버로 활동했다. 데이비스의 퓨전 재즈 명반 ‘Bitches Brew’에서 그의 일렉트릭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데이비스의 밴드에서 나온 뒤엔 서클, 리턴 투 포레버 등을 결성해 아방가르드 재즈, 라틴 재즈, 퓨전 재즈 등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이어갔다. 리턴 투 포레버 시절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Spain’은 재즈 스탠더드로 널리 사랑 받는 명곡이다. 코리아는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 밴조 연주자 벨라 플렉 등과 프로젝트 형태의 듀오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미에서 60회 이상 후보에 올라 23차례 수상한 그는 정통 재즈에서 출발해 클래식, 록, 라틴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받은 퓨전 재즈를 선보이며 50년 이상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군림했다. 3월 14일 열리는 그래미 재즈 부문에도 후보에 올랐다.
고인의 타계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는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고인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뛰어난 재즈 혁신가 중 하나였고 50여년간 수많은 찬사를 받아오며 재즈의 교과서를 새로 썼다"고 치켜세웠다. 싱어송라이터 존 메이어는 자신의 SNS에 “내가 함께 즉흥 연주를 했던 이들 중 가장 위대한 단 한 명의 음악인이었다”고 썼고, 포크 가수 캣 스티븐스는 “내가 함께 작업하는 영광을 누렸던 음악인들 중 가장 혁신적이었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