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오는 5월 대형주에 한해 공매도를 재개하기로 한 가운데, 최근 한 달 사이 이들 종목에서 대차거래(주식을 빌리는 거래) 잔고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차거래 잔고가 '공매도 선행지표'로 불리는 만큼 5월 3일 코스피200·코스닥150 종목에 대한 공매도가 재개되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만 대차잔고 확대를 반드시 하락의 전조로 볼 순 없다는 지적도 있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국내 대차거래 잔고는 약 14억4,200만주, 금액으로는 약 51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연초(46조8,000억원) 대비 한 달 새 약 10%가량 늘어난 결과다.
대차거래는 기관투자가 등이 일정한 수수료와 담보를 제공하고 주식을 빌려 나중에 상환하는 거래를 말한다. 주로 공매도 투자자들이 대차거래를 활용해 주식을 빌려 팔고, 나중에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사들여 갚기 때문에 대차잔고가 증가했다는 건 공매도 수요 역시 늘었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특히 코스피 대차거래 잔고가 연초 이후에만(지난 2일까지) 8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지난해 3월 공매도 금지 이후 1년 사이 주가가 2~3배씩 급등한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들을 중심으로 대차거래 잔고가 급증했다. 지난해 3월 이후 삼성전자, LG화학, 현대차의 대차거래 잔고만 1년 새 2조원 넘게 불었다.
이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오는 5월 공매도가 재개되면 주가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형주에 공매도가 몰려 지수가 빠지면 다른 지수연동 상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상이다.
특히 금융위가 우선 공매도를 재개하기로 한 코스피200 및 코스닥150 종목은 전체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에서 각각 88%와 50%를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전면 재개'나 다름없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관계자는 "우선 재개 종목들을 보면 그동안 공매도로 피해 본 기업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며 "벌써부터 공매도 대기 물량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지수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수급요인만으로 주가를 설명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차거래 차입자는 빌린 주식으로 상장지수펀드(ETF) 설정 및 환매, 환매조건부채권(Repo) 거래 등 다양한 거래를 하는 만큼 대차잔고의 증가를 공매도 증가로만 연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대차잔액이 늘어났다는 것을 반드시 공매도 대기물량 확대나 주가 하락 전조로 볼 순 없다"며 "투자자가 어떤 목적으로 주식을 빌렸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도 없고, 다양한 외부 변수를 고려해 공매도 전략을 취하는 만큼 대차잔액과 주가를 직접 연결시키는 건 무리"라고 설명했다.
금투협 측도 "다양한 투자전략 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만큼 대차거래 잔고가 추후 발생할 공매도 예정수량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전했다. 전날 금융위는 "시총이 크고 유동성이 풍부한 대형주들은 공매도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