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간의 호언대로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주택 공급 물량을 발표했다. 서울에 풀리는 주택만 분당신도시 3개 수준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된 주택 공급계획 물량은 200만가구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아직 업계 반응은 반신반의다. 중장기적으론 주택 수요가 완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입주까지 수 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당장 시장 안정까진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정비사업에 따른 대규모 이주는 전셋값도 들썩이게 할 수 있다.
4일 정부가 발표한 주택공급 대책의 핵심 목표는 시장의 불안심리 완화다. 상당량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겠다는 신호를 통해 집값과 전셋값을 부채질하고 있는 다급해진 주택 수요를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부동산 시장 안정세가 정착되지 못하는 점에 송구하다"며 재차 사과하면서도 "'공급 쇼크' 수준의 공급 확대를 통해 주택 시장이 확고한 안정세로 접어들 것을 확신한다"고 기대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정부 대책에 '공 들인 흔적'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최대한 노력은 했다" "내놓을 카드는 거의 담겼다" 등의 평가가 나온다.
중장기적으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가능성도 높다는 전망이 많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의 경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대상에서 제외했기에, 재건축 공급의 물꼬를 텄다고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 계획대로 주택 공급이 속도 높게 추진된다면, 무주택자의 심리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건은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사업들에 시장이 얼마냐 호응하느냐다. 83만가구 공급이라는 목표도 실제 역세권, 저층 노후주택 주민들이 공공 주도 개발에 동의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해 진다.
일부 사업은 이미 닻을 올렸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지하철5호선 굽은다리역 등 일부 지하철역 인근 토지 소유주는 최근 구청으로부터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대한 의견 제출 요청을 받았다. 김흥진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빠르면 하반기에 사업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신규 공공택지는 상반기에 2, 3차례 나눠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서울 강남권 대형 재건축 단지는 이번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강남구 '은마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A씨는 "재건축부담금을 면제해준다고 해도, 증가 용적률의 50% 이상을 기부채납해야 한다면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우리에게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사업 참여율이 높다 해도 시장에 즉각적인 안정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입주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2025년까지 부지 확보가 목표"라며 "이후 실제 입주까진 최소 3년이 더 걸린다"고 설명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단기적 안정보단 집값 상승폭을 둔화시키는 정도로 효과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전세값에 부정적 영향도 우려한다. 재개발·재건축에 따른 이주 수요가 커지고, 청약 대기 수요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청약 대기자가 발생하면 전세 수요가 늘게 되고, 재건축이 활발해지면서 이주 수요가 발생하면서 전셋값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며 "전세 시장 안정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김흥진 주택토지실장은 "개발 사업을 가급적 순환형으로 진행하고, 인근 매입임대를 활용해 임시 이주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며 "이마저 어렵다면 광역적 순환개발을 통해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이주수요를 받을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1년 남짓 남은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이번 공급대책이 과연 동력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도 주요한 의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1년 남짓뿐인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단 한 가구도 입주될 가능성이 없고, 이 기간 10만가구도 착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법 개정과 함께 추진하는 만큼 사업의 근거가 확실하고, 실제 현장에서 일어날 수요도 충분히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