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일주일 정도 집을 떠나있어야 하는 일이 있어 요즘 짐을 챙기는 중입니다. 대부분 하루 이틀 전에 짐을 싸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렇게 일찍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제 건망증 때문입니다. 분명히 필요한 것들을 다 챙겼다고 생각했는데도 도착지에서 짐을 풀어 보면 까먹고 가져오지 않은 것들이 꼭 있고, 한번은 자동 면도기를 포함한 세면도구들이 전부 들어 있는 파우치를 통째로 빼먹은 적도 있습니다. 준비물 목록을 작성하면 될 것도 같지만 문제는 목록을 작성할 때조차 한두 가지를 꼭 빼먹는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병'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방 한쪽에 캐리어를 준비해 놓고 생각날 때마다 미리 미리 하나씩 채워 넣습니다. 나름대로 제 건망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건망증은 제 큰 단점 중의 하나로 보통은 나이가 들면서 생긴다고 하는데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어머니께서 "너는 젊은 애가 이렇게 건망증이 심한데 나이 들면 정말 걱정된다!"라고 자주 말씀하셨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도시락을 챙길 때 반찬통을 잊어버리고 밥만 가져갔었던 적도 많았고 가지고 나갔던 우산을 잃어 버리고 들어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건망증은 저 스스로에게도 불편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실수 아닌 실수로 주위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게 되고 매사에 대충이고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단점이라는 것은 모자라고 허물이 되는 '못한 점'이고 특히나 알면서도 극복하기 쉽지 않거나 극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쉽게 극복할 수 있다면 이미 단점이 아니죠. 그래서 단점은 노력해서 극복하는 것이 최선이기는 하지만 만약 해도 안 된다면 '나는 그런 단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포기하고 그대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 "내가 해 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라는 식의 말을 자주 듣기도 하고 쓰기도 하면서 마치 '진리'인 듯 생각하지만 경우에 따라 이 말은 상당히 '폭력적'일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능력 치나 처해 있는 환경, 상황이 전부 다르기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다 해도 '죽어라' 노력해도 못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런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와 자괴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누군가가 경우에 따라 나일 수도 있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감출 수 없는 것을 감추려 한다거나 극복할 수 없는 것을 극복하려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대신에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필요 이상으로 자책하거나 상처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주위로부터 이해 받을 수 있는 폭도 넓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나의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듯이 다른 사람의 단점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상대방의 단점을 고쳐보겠다는, 혹은 고쳐지기를 바라는 욕심과 기대와 실망으로 스스로 상처받는 일이 줄어들고 또한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상처주는 일도 줄어들 것입니다. 단점을 고치겠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완벽하지 못한 우리들이기에 '너와 나의 단점과 함께 살아가는 것' 또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삶의 지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