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법정에선 무죄, 민사법정에선 유죄... '진실의 입' 다문 NFL 영웅

입력
2021.02.05 05:30
15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0> O J 심슨 전처 살인사건


1994년 6월 12일 오후 10시55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 인근 고급 주택단지인 브렌트우드. 주민 스티븐 슈와브는 산책을 하다 한 집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짖는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개는 슈와브를 졸졸 따라 왔다. 마침 이웃 수크루 보즈테페와 마주친 슈와브는 개를 돌봐줄 것을 부탁하고 자리를 떴다. 개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번엔 보즈테페를 끌고 자꾸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 개를 쫓아 발걸음을 옮긴 보즈테페는 한 저택 입구에서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다.

시체였다. 남녀 한 쌍이 흉기에 찔려 피범벅이 된 채 숨져 있었다. 특히 남성의 상태가 심각했다. 온 몸에 흉기 자국이 수십 곳이나 됐다. 알고보니 사건 현장으로 그를 이끈 개는 숨진 여성이 기르던 반려견이었다. 보즈테페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이 살인 사건이 미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법정 다툼을 부를 줄은.


‘명예의 전당’ 풋볼 스타, 살인 용의자로

살해된 여성의 이름은 니콜 브라운. 1973년 미 풋볼리그(NFL) 정규시즌 MVP 출신이자 1985년 NF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흑인 슈퍼스타 O J 심슨의 전처였다. 함께 발견된 시신은 남자친구 로널드 골드먼이었다. 심슨은 바로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사건 발생 이튿날 그는 경찰에 출두했고, 흉기에 베인 것으로 보이는 왼손 중지의 상처도 확인됐다. 심슨은 과일을 깎다가 다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자신은 살인 추정 시간 시카고에서 사업 관련 미팅을 했다는 알리바이를 댔다.

그러나 모든 정황은 심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가 1992년 브라운과 이혼 후에도 전처 주위를 맴돌았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심슨이 브라운 집에 들이닥쳐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경찰 신고 기록도 존재했다. 전처가 새 애인과 사귀자 질투심에 죽였을 거라는 추론이 나왔다.

심증은 충분했다. LA경찰은 첫 출두 나흘 뒤인 17일 오전까지 심슨에게 재출석을 요청했다.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곧장 변호사 로버트 카다시안의 집으로 갔다. 심슨이 그곳에 머문다고 했기 때문이다. 심슨은 없었다. 경찰은 그 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어 “브라운과 골드먼 살인 혐의로 심슨의 영장을 발부 받았다”고 공개했다.


1억명이 지켜 본 ‘세기의 추격전’

이에 카다시안 변호사도 세 시간 후 기자회견을 통해 심슨의 서한을 낭독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살인사건과 나는 관련이 없다. 내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 것을 요청한다. 미안해하지 말라. 난 좋은 삶을 살았다.” 누가 봐도 유서였다. 오후 6시 심슨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흰색 차량을 발견한 것은 오렌지카운티 보안관 래리 폴이었다. 운전자는 심슨의 절친인 그레그 카울링스. 고속도로 정체에 걸려 서행하고 있는 틈을 타 폴이 권총을 들고 차량으로 다가가 “시동을 끄라”고 하자 카울링스는 다급히 말했다. “총을 치워 달라. 심슨이 뒷좌석에서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

카울링스는 잠시 후 휴대폰으로 911에 전화를 걸었다. 심슨이 어머니에게 가고 싶어한다며 극단적 선택을 염두에 둔 듯 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차량은 폐쇄된 5번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달렸고 경찰차 수십 대가 뒤따랐다. 언론도 급히 움직였다. CNN 등 미 유수 언론사들이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추격전을 실시간 중계했다. 휴스턴 로케츠와 뉴욕 닉스가 맞붙은 미 프로농구(NBA) 결승전이 진행 중이었지만 심슨이 우선이었다. 추격전을 지켜 본 미국 내 시청자는 1억명에 달했다.

경찰은 100㎞를 뒤쫓은 끝에 심슨 자택 인근에서 그가 탄 차량을 막아 섰다. 심슨은 권총을 꺼내 들고 목숨을 끊겠다고 소동을 피웠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달라고도 했다. 한 시간여가 지난 뒤 변호사가 집 안으로 들어갔고, 그는 순순히 경찰 체포에 응했다.


치열한 법리 싸움... '스모킹 건'은 없었다

모두가 심슨의 유죄를 예측했다. 검찰이 배심원단에 내놓은 증거물들은 살인 혐의를 증명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심슨의 양말에 묻은 혈액에서 브라운의 DNA가 검출됐고 골드먼 옷에서는 흑인 머리카락도 발견됐다. 사건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족적 역시 심슨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결정적인 증거는 장갑이었다. 현장 부근에 떨어진 피가 묻은 가죽장갑에서 심슨과 브라운, 골드먼의 DNA가 전부 확인됐다.

그러나 심슨을 옴짝달싹 못하게 할 최후의 한 방, ‘스모킹건’은 부족했다. 당대 최고의 법의학자였던 헨리 리 박사는 수사당국이 DNA 등 증거를 취득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소견을 밝혔다. 브라운의 등에 묻어 있던 범인 핏자국이 지워진 탓이다. DNA 대조를 위해 채취한 심슨의 혈액 중 10분의 9에 해당하는 150㎎이 사라지면서 조작 가능성도 제기됐다. 경찰은 분실한 혈액이 어디로 갔는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핵심 증거물이라던 장갑은 되레 무죄 평결의 계기가 됐다. 장갑이 너무 작아 심슨의 엄지와 검지가 아예 들어가지도 않은 것이다. 심슨이 꾸린 ‘올스타’ 변호인단의 일원 조니 코크란이 “(장갑이) 맞지 않으면 무죄다”라고 소리치자, 배심원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게다가 문제의 장갑은 첫 수사 기록물에 포함되지 않아 경찰의 취득 경로에도 의심이 쏟아졌다.

당시 불거진 인종차별 논란도 심슨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2년 전 LA폭동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변호인들은 수사팀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며 사건 전체를 흑백 논리로 둔갑시켰다. 12명의 배심원 가운데 흑인이 무려 9명(백인 2명, 히스패닉 1명)이었던 만큼 이 전략은 톡톡한 효과를 봤다. 심슨은 사건 발생 1년 반 만인 1995년 10월 3일 배심원 무죄 평결을 받았다. 1심에서 무죄로 결론나면 검찰이 항소를 할 수가 없는 미국법에 따라 심슨은 자유의 몸이 됐다.


진범은 심슨이 숨겼다?

민사 분쟁의 결과는 달랐다. 1997년 피해자 브라운과 골드먼의 유족이 낸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심슨이 3,350만달러(373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형사 법정은 심슨의 살인을 합리적으로 입증하지 못했지만, 민사 법정은 그가 두 사람을 살해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심슨의 아들인 제이슨이 범인일 가능성을 내놓기도 했다. 리 박사의 주장이다. 무죄의 증거가 됐던 장갑은 브라운이 제이슨에게 준 선물이었고, 현장에서 발견된 운동화 자국이나 모자도 모두 제이슨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주변 사람들 역시 심슨 첫 부인 소생인 제이슨과 브라운의 사이가 매우 나빴다고 증언했다. 만약 진범이 제이슨이라면 퍼즐은 풀린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장갑의 다른 한 쪽이 왜 심슨의 집에 있었는지, 골드먼의 옷에는 왜 흑인계 머리카락이 묻어 있었는지, 왜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당부했는지, 왜 심슨은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용의자를 지목하지 않았는지.

하지만 심슨은 여전히 입을 닫고 있다. 그는 사건 발생 25년을 하루 앞둔 2019년 6월 11일 AP통신 인터뷰에서 “생애 최악의 날로 돌아가 다시 체험할 필요가 없다”며 “삶은 괜찮다”고 밝혔다. 다만 엄청난 수임료를 지불한 탓에 경제적 궁핍은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슨은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재무상태에 대해선 언급을 꺼렸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