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일 북한 원전 논란과 관련, 삭제된 산업부 문건 제목에 적힌 ‘v1.1’ ‘ v1.2’가 대통령을 뜻하는 VIP의 이니셜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문서 작성 시 흔히 적는 버전(version) 표시를 두고 과도한 억측을 동원했다가 “문서 작업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게 아니냐”는 역풍을 맞은 것이다.
□오 전 시장은 결국 유감을 표명하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그의 입장문이 비문(非文)으로 구성돼 정확히 무엇에 대한 유감인지가 불분명하다. 그는 “저의 입장에 혼란을 초래한 결과가 되어 안타깝습니다”고 적었다. V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그의 입장에 혼란을 초래해서 스스로에게 안타깝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의 입장이 국민들에게 혼란을 초래해서 안타깝다는 것일까? 어쩌면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저런 비문을 낳은 것인지 모른다.
□비문 문장가로 빼놓을 수 없는 이는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27일 페이스북에 “그날이 쉽게 오지 않음을 알았어도 또한 그날이 꼭 와야 한다는 것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고 적었다. 요령부득의 문장이다. 특히 어색한 것은 ‘알았어도’ 란 말이다. ‘~어도’ 어미는 ‘슬퍼도 울지 않는다’처럼 불굴의 의지를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하고 ‘로또 번호만 알았어도’ 처럼 후회의 심경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추 전 장관이 사용한 ‘알았어도’가 그 다음 문장과 어울리지 않아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이때는 그의 사표 수리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불굴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장관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항명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저런 이상한 문장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비문이 생기는 것은 대부분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주어를 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글을 쓸 때도 주어를 생략하다가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 정치인들의 비문은 자칫하면 ‘주어 없는 정치’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책임의식 실종이 비문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주어와 술어가 분명한 문장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