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교체론

입력
2021.02.05 18:00
22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46년 2월 소련 주재 미국대사 대리였던 조지 케넌은 '긴 전문(Long Telegram)'이란 제목으로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타전했다.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에도 익명으로 게재된 이 글은 냉전시대의 신호탄이 됐다. 이를 연상시키는 ‘더 긴 전문(The Longer Telegram)'이 최근 미 매체 ‘폴리티코’에 익명으로 실렸다. 이번엔 대상이 중국이다. 시진핑 주석이 민주주의 진영의 위협이 되고 있다며 미국의 대중 전략은 시 주석을 집중 겨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공산당과 시 주석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며 사실상 ‘시진핑 교체론’을 제안했다.

□ 시 주석의 리더십과 야심에 대한 당 내부의 의견이 나뉘고 원로들도 끝없는 절대 충성 요구에 분노하고 있다는 분석은 눈길을 끈다. 오랫동안 합의된 집단지도 체제를 뒤엎고 1인 장기 독재를 구축한 시 주석에 대한 불만은 가능한 시나리오다. 2012년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를 중심으로 한 쿠데타설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국의 권력 교체를 언급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란 점에서 극도로 삼가야 할 사안이다. 중국은 거짓으로 가득한 음모론이자 신냉전을 부추긴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 ‘더 긴 전문’은 남북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이 중국 쪽으로 전략상 표류하는 걸 막기 위한 한일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중국이 북한 파키스탄 러시아 외엔 실질적 동맹이 없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한국의 중국 경도를 막고, 동맹국이 많은 미국의 강점을 살려 중국을 압박하란 얘기다.

□ ‘긴 전문’이 냉전을 고착화하면서 한반도 분단에도 영향을 미친 점을 감안하면 ‘더 긴 전문’을 간과할 순 없다. 이미 기고문의 주문대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미국의 복귀와 동맹 강화를 선언했다. 한미 정상통화에서 한일관계가 논의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더 긴 전문’은 서두에서 우선 중국에 대해 정확히 안 뒤 장기 전략을 수립해 일관되게 이행할 것을 역설했다. 우린 중국에 대해 얼마나 알까.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근거 없는 환상도 보인다. 철저한 이해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우리만의 ‘제일 긴 전문’이 절실하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