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려동물 사료 시장이 연간 1조원대인데, 한국 미술 시장이 5,000억원이 안 돼 씁쓸했죠. 하지만 한국 미술이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한국 미술도 한류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취임 2년을 맞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미술의 자존심을 늘 강조해온 그였다.
갑자기 개 사료 이야기가 나온 건, 지난해 주목을 끈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다. 미술관에 반려견이 관람객으로 초대된 이 실험적인 시도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의 주요 일간지 클라린에서도 소개했을 만큼 화제를 모았다.
성공적인 전시였지만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막상 준비를 하다 보니 복병이 많았죠. 미술관에 온 개들이 서로 싸워서 난리가 나면 대응을 해야 하니까 법률적인 검토까지 해야 했어요. 주인공인 개에게 얼마의 입장료를 받아야 할지도 고민이었는데, 결국 안 받기로 했었죠. 저희 미술관은 성인부터 입장료를 받는데, 개는 대체로 스무 살이 안 넘을 테니까요.”
이 전시는 처음 아이디어를 낸 학예사조차 실제로 열릴 줄 예상 못했던 전시다. 하지만 윤 관장의 통 큰(?) 승낙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어떻게 개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시각을 바꿔보기로 했어요. 미술 전시 영역을 확장하는 시도를 한 번 해본 거죠.” 개를 위한 전시회가 끝나니 고양이를 위한 전시회를 열어 달란 요청이 쏟아졌다. 검토를 했지만 결론은 ‘열 수 없다’ 였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데리고 다니며 산책을 시키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윤 관장은 개, 고양이 전시회 검토를 하면서 ‘동물 박사’가 됐다며 웃었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윤 관장은 취임 후 2년 간 거침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 중 하나가 한국 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300’ 국문본과 영문본을 발간 한 것이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300인(팀)의 작품을 시대별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0월 기준 8,000여점의 소장품 가운데 치열한 논의 끝에 선정된 작품들이다. 윤 관장은 “국내외에서 전시, 학술 등의 활동을 할 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책이 발간되면서 한국 미술의 국제화는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이번 달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북한 미술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됐다. 상호 비교 연구를 통해 반쪽 짜리 한국 미술사를 보완하려는 시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통일부로부터 북한미술 특수자료 인가기관 승인을 받은 후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해 현재 북한예술총서 등 733건을 확보한 상태다.
윤 관장은 취임 후 소외된 부분에 관심을 쏟기도 했다. 개관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3월 한국 근현대 서예전을 개최한 게 대표적 예다. 이 전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을 통해 먼저 공개됐는데, 큐레이터가 전시장을 돌며 작품을 설명한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가 10만회를 넘는 등 반향을 일으켰다.
대만의 한 시립미술관은 최근 초대전을 열고 싶다는 제안을 해오기도 했다. “해외 유명 작품들은 한 점에 100억, 1,000억씩도 하잖아요? 미술품은 굴뚝 없는 공장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국격을 높이고 외화벌이를 하는데, 한국미술이 일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