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국 카르타고와 신흥 강국 로마가 지중해 제해권을 두고 격돌했던 '포에니 전쟁(Punic War)은 B.C 264~ 146년의 약 120년간 3차례 치러졌다.
시칠리아 지배권을 두고 벌인 1차전쟁(B.C 264~B.C 241)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6년뒤 명장 한니발을 앞세워 전투코끼리까지 동원해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하면서 약 60년에 걸친 2차전쟁(B.C 247~B.C 183)을 일으켰다. B.C 216년 칸나이(Cannae)전투에서만 로마군 약 4만 명이 전사했다. 하지만 전선이 시칠리아와 그리스, 북아프리카까지 확대되고 로마군의 지연 전술이 먹히면서 카르타고는 또 패배했다. 로마가 마케도니아 전쟁을 시작하고 영토 확장으로 군대가 분산되자 카르타고는 로마정복지 반 로마세력과 연합해 다시 전쟁을 감행했다. B.C 147년부터 2년간 치른 3차전쟁서도 카르타고는, 여성들이 활 시위로 쓰라며 머리카락까지 잘라 주는 격렬한 투혼에도 불구하고 스키피오의 로마군에게 함락 당했다.
전쟁이 끝날 때마다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잔혹한 보복이 뒤따랐다. 3차전쟁 직후 카르타고인 5만여 명이 노예로 팔려갔고, 남은 이들도 최하층 피식민인의 삶을 감당해야 했다. 도시는 거의 폐허가 됐고, 토지에는 소금이 뿌려졌다. 하지만 해양지정학적 위치 덕에 카르타고는 로마 제국의 지중해 무역항으로서, 비잔틴 시대를 넘어 7세기 무슬림 침략기와 튀니지의 영토가 된 지금까지 고대의 지명 그대로 버텨냈다.
로마의 카르타고 정복으로 종식된 포에니 전쟁은, 현대적 의미의 휴전·종전 협정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 끝난 전쟁이 아니라고 여긴 이들이 있었다. 카르타고 명예시장으로 당시 아랍연맹 사무총장이던 튀니스인 체들리 클리비(Chedli Klibi)가 이탈리아 공산당 소속의 우고 베테레(Ugo Vetere) 로마 시장에게 1985년 1월 평화협정을 제의, 2월 5일 나란히 서명했다. 종전 2,131년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