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메시지는 말로만 발신되지 않는다. 의상이나 염색 등 외양의 변화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최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미셸 오바마 여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이 보라색 계열 의상을 입고 참석한 것은 그 대표적 예이다. 보라색은 여성과 흑인 민권운동을 상징하기도 하고 민주당의 상징색 파랑과 공화당의 상징색 빨강을 섞은 색이라 '통합'의 의미도 있다.
4ㆍ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여야 후보들도 크고 작은 외모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종전과 다른 인상을 주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고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종종 장문의 글보다도 이런 소소한 변신의 영향력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눈썹이다. 하얗게 새고 숱이 없던 눈썹을 진하게 염색하고 눈썹 선도 위로 올려, 정치권 입문 이후 거의 변화가 없던 인상이 확 달라졌다. 부끄러움 타는 모범생 이미지가 강했던 전보다 강단 있고 젊어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안 대표 스스로 눈썹 문신을 통해 이른바 ‘강(强)철수’로 이미지 변신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안 대표가 ‘예전에는 나만 진솔하면 국민이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외모도 중요한 소통방식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 적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최근 ‘1일 1파랑’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 26일 파란 코트와 파란 운동화를 착용한 채 출마선언을 한 것을 시작으로, 매일 파란색 착장을 하고 있다. 파란색 운동화는 2018년 지방선거 때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장관 시절에는 주로 검은 단화를 신었다.
파랑은 민주당 상징색이다.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야 당 경선을 통과할 수 있는 만큼, ‘민주당이 곧 나’라는 인식을 지지층에 심어주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소속 나경원 전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전에 돌입한 뒤부터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닌다. 2002년 정계 입문 때부터 20년 가까이 유지해 온 단발머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는 경우도 부쩍 많아졌는데, 출마 선언 당시 신은 운동화는 시장에서 구입한 2켤레에 3만5,000원짜리라고 한다. 최근 딸과 함께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안경 쓴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에는 외연 확장에 한계를 지웠던 ‘차가운 도시 여성’이라는 강한 이미지를 벗고 친근하고 소탈한 면모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깔렸다. 나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외모를 채 가꿀 시간 없이 일하는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라고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정장 대신 터틀넥을 입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이미 서울시장을 지낸 그는 ‘올드보이’로 인식되지 않도록 젊어 보이는 복장을 즐겨 입는 것으로 보인다. 30일 지역 사무실에서 열린 세미나에는 빨간 스웨터에 빨간 마스크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예전에는 훤칠한 외모가 정치력을 가린다고 생각해 일부러 꾸미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워낙 경쟁이 치열한 만큼 강점을 살리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친근함을 어필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빨래하거나, 파자마 차림으로 '홈트'(홈트레이닝·집에서 하는 운동)하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를 모은 그는 시장에서 셔츠 단추를 푼 채 어묵을 먹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늘었다. 4선 중진 의원에게 따라 붙을 수 있는 트렌드에 뒤처졌다는 선입견이나 중후한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