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엑셀 밟은 차… 대법 "안 나갔다면 음주운전 아냐"

입력
2021.01.31 11:50
"음주운전 미수는 처벌 규정 없어"

술에 취한 채 운전대를 잡았지만, 차가 고장나 움직이지 않았다면 음주운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A씨는 2016년 1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사고로 멈춘 차량에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는 등 운전을 하려고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초 운전대를 잡았던 건 A씨가 아닌 대리기사였다. A씨는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마친 뒤 집으로 가기 위해 대리기사를 불렀다. 그는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잠들었다가 사고가 난 뒤에 잠에서 깼다. 차는 도로 한복판에 멈춰 있었고 대리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A씨는 도로 위에 정차된 차를 움직이기 위해 주행을 시도했으나, 차량이 파손돼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목격자의 신고로 A씨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검찰은 비록 차가 움직이진 않았지만, A씨의 행위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그를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실제로 차를 움직이지 못해 ‘음주운전 미수’에 그쳤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은 "시동을 걸고 기어를 조작하고 엑셀을 밟는 행위는 자동차를 이동하기 위한 일련의 준비과정에 불과하다"라며 "음주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실제로 이동했을 때 음주운전 위험성이 현실화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음주운전죄의 장애미수 또는 불능미수에 해당하지만, 해당 죄는 미수범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장애미수란 범죄 실행엔 착수했지만 외부 사정으로 실제 범행을 마치진 못한 경우를 말한다.

2심도 1심 판단이 옳다고 봤고,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A씨의 무죄는 확정됐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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