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공식 출범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헌법재판소가 공수처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하면서 태생의 적법성은 확보됐지만 공수처가 ‘정권 수호처’로 전락할 것이라는 시선이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의 씨앗들이 발아해 계속 성장할지, 흙 속에 묻혀 버릴지는 3년 동안 공수처의 틀을 잡아가야 할 김진욱 공수처장에게 달렸다.
김 처장은 법조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정치적 편향성 없는 중립 성향의 판사 출신’이라는 모범 답안 같은 세평, 판사ᆞ변호사 경력과 헌재 시절 이력만 알려져 있을 뿐, 공수처장에게 필요한 리더십을 갖췄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은 드러난 게 거의 없다. 합리적이고 조용한 성품이지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기질도 있다는 풍문만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공수처장 임명 후 그의 행보에 집중되는 시선들이 인사청문회 이상으로 예리하다. 공수처의 존립 가치인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켜낼 의지와 강단이 있는지 검증하는 본격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장으로서 첫 권한 행사인 차장 임명 제청부터 논란이 됐다. 김 처장이 자신의 제청권과 대통령 임명권의 조화를 위해 복수 후보 추천을 언급한 게 화근이었다.
결과적으로 여운국 차장 후보 단수 추천과 임명으로 끝났지만 공수처 수사 대상인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김 처장의 생각의 일단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그의 인식의 문제점 만큼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공수처법 7조는 처장의 차장 제청권만 명시하고 있다. 단순 해석으론 김 처장 의견대로 복수 후보 제청이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공수처와 처장의 특별한 위상과 지위를 감안해야 한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독립성 보장 장치로 처장의 3년 임기를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처장의 임무 수행에 개입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차장 후보 제청은 그 자체로 처장의 독립적 임무 수행이다. 때문에 대통령의 차장 임명에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될 여지가 없어야 한다.
공수처 차장은 공수처 수사를 사실상 진두지휘하는 최고 실무 책임자다. 어떤 인물을 앉히느냐는 공수처장의 독립적ᆞ중립적 수사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인물의 선택을 김 처장은 대통령 뜻에 맡기려 했다. 공수처 운영 방향과 독립적 수사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만한 부분이었다. 만일 김 처장이 복수로 후보를 제청하고 대통령이 낙점했다면 두고두고 공수처 수사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정치적 시비와 논란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가뜩이나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을 놓고 정치 공방이 오가는 마당이다.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발언이 도화선이 돼 김 처장이 덥석 가져오기도, 무시하기도 어렵게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 사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김 처장이 어떤 입장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공수처의 신뢰가 좌우될 사안들이다. 이처럼 민감한 상황에서 대통령 임명권까지 배려하는 인식의 노출은 분명 그의 불찰이다.
김 처장은 공수처를 수사 방식과 내부 조직 문화 등에서 검찰과 다른 조직을 만들겠다고 했다. 표적ᆞ별건ᆞ먼지떨이 수사 관행을 없애고 상명하복이 아닌 수평적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검사만 2,300명인 검찰 조직과의 진정한 차별화는 김 처장이 공수처 검사 23명과 함께 공수처의 완전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차장 후보 복수 제청 소동은 그런 점에서 김 처장에게 입에 쓴 약이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