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의 선구자가 남긴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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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 12:02


20세기 중반, 인류는 타임캡슐을 만들어 살아있는 인간을 미래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과학계는 영상 2도의 저온 상태에서 오랫동안 잠을 자면서 육체의 노화를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다. 고도의 지적 능력과 운동 능력을 갖춘 한국인 남성 우선구가 미래로 갈 인간으로 선택된다. 이윽고 긴 잠에서 깨어난 우선구가 마주한 것은 161년 뒤. 오로지 단성생식을 통해 번식하는 여성들만 살아가는 세계다.

1967년 출간된 한국 최초의 장편 SF 소설 ‘완전사회’의 일부 내용이다. 1965년 ‘주간한국’ 창간 기념 추리소설 장편 공모전에 당선된 이 소설은 한국 SF문학 사상 최초의 성인용 장편소설로 평가 받는다. 당시 매체들은 “한국에서 처음 보는 이색 소설”(1967년 4월 24일 경향신문), “한국에서 처음 보는 이 분야의 대작”(1967년 5월 25일 서울신문)이라며 경탄을 보냈다.


이 소설을 쓴 문윤성 작가는 1916년 출생으로 1946년 단편 ‘뺨’을 신천지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작품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1965년 발표한 '완전사회'로 일약 주목을 받았다. 생전 발표한 40여편의 작품 중 11편을 SF작품으로 써낸 국내 대표 SF작가로, 지난 2000년 8월 24일 수원에서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한국 SF소설의 선구자인 문 작가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SF전문 출판사인 아작은 ‘완전사회’를 비롯해 정치 스파이 스릴러인 ‘일본심판’(1987), 작가 사후 20년 만의 첫 SF소설집인 ‘월드컵 특공작전’(2011)을 한데 엮은 ‘문윤성 걸작선’을 최근 완간했다.

‘월드컵 특공작전’에는 인류의 멸종 후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의 모험 활극인 ‘낙원의 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에 대한 복수를 다룬 ‘소련공습’, 월드컵 결승전에서 만난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적 대결을 다룬 ‘월드컵 특공작전’을 비롯해 한국 고전 SF의 진수가 담겼다. 1970~80년대 한국 사회의 이슈를 돌파하는 작가의 과학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이달 31일 마감되는 제1회 2021 문윤성 SF문학상 공모전도 개최한다. 상금 3,000만원 규모의 국내 최초 장편 SF문학상이다.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김초엽, 박해울, 천선란 등 걸출한 신인작가를 배출하며 국내 대표 SF공모전으로 자리잡은 한국과학문학상의 투고작 편수를 이미 넘어섰다는 후문이다. 수상작은 3월에 발표된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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