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세계인권사에 큰 획을 긋는 판결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고되었다. 반인도적 범죄나 중대한 인권침해를 저지른 어떠한 국가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원칙이 천명되었다. 이번 판결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30년 이상 투쟁으로 이루어 낸 결과이며, 모든 인류에게 남긴 소중한 자산이자 세계인권사에 새롭게 기록되어야 할 '권리장전'이다.
일본의 법률가로서 30년 가까이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헌신해 온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는 "국제법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용기 있는 판결로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어 아시아에서도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러한 국내 판결의 축적은 국익을 우선하는 국제법에서 인권을 우선하는 국제법으로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다. 일본이 '국민정서법'이라고 야유하는 사이에 한국의 사법부는 국제법의 발전을 받아들여 일본에서 등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 나가고 있다"며 이 판결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야마모토 변호사의 언급처럼 세계 각국에서 국가면제 이론에 대한 도전이 계속되어 왔다. 일본도 이미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사망 상해 등 피해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국가라도 그 나라 법정에서 세울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면서 '2015한일합의가 한일 양국 정부 간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판결이 확정된 날 '우리 정부는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헌법재판소는 2015한일합의의 위헌성을 심리한 사건에서 2015한일합의로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명확히 밝혔다. 2015한일합의와 무관하게 반인도적 불법행위인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공동대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한일관계라는 좁은 시야에 갇혀 위기만 강조하는 공포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국제인권 측면에서 진일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국 정부는 이 판결을 무기 삼아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무시하고 국제법의 발전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제대로 추궁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한일 시민사회가 지난한 투쟁을 통해 얻어 낸 역사적 판결을 살아 있는 권리장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전쟁범죄 피해자들의 등불이 될 이 판결의 의미를 살리는 일, 그것이 우리가 피해자들의 마지막 외침에 응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