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나라’ 정체성 살리려는 바이든... 보수 반발에 가시밭길 예고

입력
2021.01.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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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취임 후 일주일 속도전 핵심은 이민개혁
美사회 논쟁이슈....행정명령 서명 내주로 연기돼
국경 절차 개선, 난민가족 재결합 지원책 예정


이민정책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트럼프 지우기(ABT·Anything But Trump)’ 행보 중 가장 상징적인 이슈다. ‘이민자의 나라’라는 미국의 정체성을 명실공히 되살릴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회복하려는 이민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생각한 당초 미국을 세운 '이민자'들과 다르다. 29일(현지시간) 예정됐던 이민 분야 행정명령 서명이 내주로 연기된 것만 봐도 미국 내부 논쟁이 만만치 않은 화두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바이든 대통령의 친(親)이민 행보는 지난 20일 취임 첫날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한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중단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인 다카(DACA) 제도 유지ㆍ강화 △비시민권자 추방 100일간 유예 △미등록 이민자 인구조사 집계 배제 조치 철회 △이슬람 주요 7개국 입국제한 조치 무효화 등 첫날 서명한 행정명령 17건 중 6건이 이민정책과 연결됐다.

특히 취임선서 직후 가장 먼저 의회에 보낸 '1호 법안'에는 불법 이민자들에게 합법 체류 자격을 주고, 종국엔 미국 시민으로 흡수하는 내용이 담겼다. 올해 1월 1일을 기준으로 불법 이민자들이 신원조회를 통과하고 납세 등 기본 의무를 지키면 5년간 임시 신분증이나 영주권을 받게 된다. 이후 3년간 귀화 절차를 밟아 정식 미국 시민이 되는 식이다. 이른바 ‘드리머(Dreamer)’라 불리는 불법체류 청소년들에겐 절차를 간소화해 재학 사실이 입증되면 즉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바이든 대통령의 움직임은 트럼프 정부가 4년간 합법ㆍ불법 이민을 모두 막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규모 추방을 감행하거나, 이들의 아동을 강제 격리한 배타적 이민정책과 대비된다. 트럼프 정부는 백인 표심을 자극한 반(反)이민 구호로 탄생해 반이민으로 굴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 트럼프 대선 선거운동의 시작은 “멕시코 이민자들은 마약범과 강간범”이라는 일성이었고, 1호 공약은 남미 국경장벽 건설, 첫 행정명령은 이슬람 국가 출신의 입국 제한조치였다.

이에 대해 각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미국은 이민자와 그 후손이 키워온 나라인 만큼 강한 반이민 정서가 사회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선거 과정에서 “미국의 가치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파격적인 이민 정책이 당장 의회 문턱을 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공화당은 이민법안이 공개된 뒤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척 그래슬리 상원의원은 “안전장치가 없는 무조건적인 (불법이민자에 대한) 집단사면은 재고할 가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공화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강행 의지까지 밝힌 상태다. 보수단체들도 공화당에 힘을 보태고 있다. 보수싱크탱크 이민연구센터(CIS) 마크 크리코리언 소장은 “이민 법안은 수도꼭지를 열어둔 채 걸레로 바닥의 물을 닦는 것과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개적인 반발도 나왔다. 텍사스주(州) 연방법원은 26일 바이든 대통령의 ‘비시민권자 추방 100일간 유예’ 조치에 대해 일시 중단 명령을 내리며 반기를 들었다. 취임 6일만에 새 이민정책에 제동이 걸리면서 향후 관련 법안 통과에 가시밭길이 예고된 것이다.

반발이 커지자 당초 29일로 예정됐던 이민분야 행정명령 서명은 일주일가량 연기됐다. 이 행정명령에는 국경 절차 문제를 개선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분리정책으로 이산가족이 된 난민 가족 재결합을 지원하는 태스크포스(TF) 설립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