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자흐스탄 남성이 리얼돌과의 결혼식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한 일본 남성은 리얼돌과 쇼핑, 산책, 성생활을 하는 일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프랑스 여성 과학자는 3D 프린터로 제작한 로봇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현재 로봇과 약혼 상태에 있다며 프랑스에서 사람과 로봇 간 혼인이 허용되면 곧바로 결혼하겠다고 밝혔다.
리얼돌(RealDoll)은 주로 여성의 몸을 재현한, 실리콘 재질의 말랑말랑한 피부와 관절을 가진 인형으로, 러브돌, 섹스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최고급 리얼돌은 세부적인 형태의 묘사, 촉감이 뛰어나고 얼핏 보기에는 사람같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리얼돌에 인공지능을 탑재해 반응도 하고 간단한 대화도 할 수 있는 섹스로봇으로 진화하고 있다.
리얼돌은 현대 산업 사회의 생산품 같지만 역사적으로 그 뿌리가 깊다. 최초의 리얼돌은 17세기 네덜란드 선원들이 긴 항해 때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었지만, 사실 리얼돌에 대한 아이디어 자체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골동품이다. 3,0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피그말리온 이야기로까지 그 상상의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니 말이다. 피그말리온 신화와 리얼돌 현상은 타인을 나와 동등한 개체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기대를 투사하고 충족시키는 대상으로만 본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그리스 신화에서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모든 여자는 매춘부처럼 음탕하다는 여성 혐오에 빠져 평생 결혼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자신이 상아로 조각한 아름답고 순결한 여인상을 사랑하게 된다.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을 사람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아프로디테 여신은 소원을 들어준다. 창백한 피부가 분홍빛 온기를 띠고 손목에서 맥박이 팔딱팔딱 뛰자 피그말리온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광채가 번쩍이는 듯한 환희를 맛본다. 표면적으로는 꿈꾸던 여인을 얻은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이기적인 나르시시즘을 충족하는 순간이다.
에드워드 번 존스(Sir Edward Burne-Jones)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화가다. 그는 피그말리온 신화를 서사 순서대로 묘사한 4부작을 두 개의 시리즈로 제작했다. 위 작품은 두 번째 시리즈의 이야기들 중 마지막 그림이다. 피그말리온이 생명을 얻은 갈라테이아의 발밑에 무릎을 꿇은 채 경이에 찬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반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의 시선은 그에게서 비켜나 초점이 없이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번 존스는 다른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신화와 중세 문학에서 소재를 빌려와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세계를 그렸다. 그는 19세기 산업화로 인한 물질문명으로부터 도피하여 꿈의 세계에 안착하고자 했다. 유부남인 번 존스는 마리아 잠바코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동반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번뇌에 찬 열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갈라테이아의 모델도 잠바코였다. 그녀는 신화 속 갈라테이아처럼 완벽한 그리스계 미인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은 결국 깨지고 번 존스는 아내에게로 돌아갔다. 그의 그림 속 커플과는 달리 그자신은 비극적인 피그말리온이었다.
한편,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폴 델보(Paul Delvaux)는 피그말리온 신화를 뒤틀어 버린다. 그의 작품 '피그말리온'에는 모래 언덕과 허름한 나무 오두막이 있는 황량한 배경 속에 남자 조각상을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는 여자 피그말리온이 등장한다. 남자들만 원하는 연인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니 피그말리온이 반드시 남자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거의 1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은 현실에서 꿈의 남자를 찾지 못해 스스로 여성 피그말리온이 된 21세기의 그 프랑스 과학자를 예언하는 것 같다.
현대인은 복잡하고 피곤한 관계에 지쳐 있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는 점점 번잡한 대면적 관계를 피하고 혼자의 시간과 자유를 즐기려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얼굴을 맞대기보다는 전화로, 전화로 목소리를 주고받기보다는 문자가 편안하다. 서로 부대껴야 하는 인간관계보다 애완용 동물이 좋고 혼밥, 혼술이 편하다. 이런 이유로,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도 같은 종을 회피하고 다른 종류의 사랑을 찾아나서고 있는 게 아닐까? 젊은 세대의 연애, 결혼 기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반려동물이든 리얼돌이든 간에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 거슬리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리얼돌, 혹은 섹스로봇을 찾는 것은 인형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순종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섹스돌을 찾는 이들이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가볍게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영국의 미래학자 이안 피어슨은 2016년 발간한 '미래의 섹스' 보고서에서 2050년이면 로봇과의 성관계가 사람 간의 성관계보다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AI 기술이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시스템과 결합해 성인용 로봇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기웃거리게 될 것이다.
지금은 리얼돌이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생산품 중 여성 형상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남자 리얼돌과 영화 'AI'의 지골로 같은 섹스로봇도 출시되고 있다. 이제 여성, 남성 누구나 피그말리온이 될 수 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직접 갈라테이아를 조각했지만, 현대의 피그말리온들은 공장에서 제작한 제품을 산다. 구매자는 인종, 피부와 머리카락 색깔, 체형 등 원하는 유형의 리얼돌을 선택할 수 있다. 외모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관계가 초래하는 어떤 갈등도 걱정할 필요 없이 뜻대로 다룰 수 있다. 일방적 관계다.
그렇다면 리얼돌은 현대 남녀 피그말리온들의 꿈의 실현일까?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은 일단은 환상적인 아내를 얻었지만, 그의 이야기의 결말이 백설공주, 신데렐라의 해피엔딩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Happily Ever After)'였을까?
아니다. 갈라테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가부장제 사회 가치를 투영한 창조물일 뿐이다.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은 아름답지만 자아가 없다. 평생 주인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갈라테이아가 진짜로 인간이 되었다면, 피그말리온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번 존스 그림 속 갈라테이아의 공허한 눈빛이 말해주듯이.
실제 현실에서도 피그말리온이 있었다.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반노예제 운동가인 토머스 데이라는 사람이다. 완벽한 아내를 찾아 나선 그는 보육원에서 사브리나라는 여자아이를 데려와 10년간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읽기와 쓰기, 철학, 물리학, 역사를 비롯해 가정주부로서의 책무까지 가르치는 등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만들기 위한 체계적인 계획을 실행했다. 그러나 결국 사브리나는 그의 아내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아를 찾아 떠났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신화를 소재로 희곡 '피그말리온'을 썼는데, 여주인공 일라이자 역시 또 다른 피그말리온이었던 히긴스를 떠나 자기의 길을 간다.
결과적으로, 신화 속 피그말리온도, 18세기의 피그말리온 토마스 데이도, 히긴스 박사도, 모두 완전한 상대를 찾는 데 실패한 셈이다. 실제의 인간 동료를 두고 사물인 리얼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21세기 피그말리온들은 어떨까? 이들은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신적으로 리얼돌, 섹스로봇에 만족할 수 있을까? 인형의 보드랍고 매끈한 실리콘 피부 이면의 텅빈 영혼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정서적 차원의 문제와는 별도로, 종의 번식으로 이어지지 않고 성적 쾌락의 충족에 그친다면 우리 사회에서 기존의 결혼과 출산, 가족제도가 지속될 수 있을지, 가족과 사랑의 개념은 어떻게 새로 정의돼야 하는지 등 난제들도 산적해 있다.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이나 무리를 지어 살면서 서로 협동하는 사회적 동물인 유인원류의 특성을 침팬지나 고릴라와 공유하는 이른바 '털 없는 유인원(Naked Ape)', '인간 유인원(Ape Man)'으로 살아왔다. 오랜 시간 협력과 공감을 통해 종을 유지해온 호모 사피엔스가 분절된 개인들의 디스커넥트(Disconnect)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