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공매도 폭파

입력
2021.01.28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비디오게임 유통 체인 게임스톱의 주가 폭등이 미국을 흔들고 있다. 새해 첫 거래가가 17달러였던 주가는 26일(현지시간) 147달러, 27일 347달러로 치솟았다. 창업자 라이언 코언은 벼락부자가 됐지만 공매도 주문을 낸 펀드들의 손실은 5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지펀드사 멜빈캐피털이 입은 손해만 37억달러(4조1,000억원)다. 공매도는 빌린 주식을 먼저 팔고 나중에 갚는 것인데, 급등한 대금을 갚느라 다른 주식까지 팔아 치우는 실정이다.

□게임스톱의 이상 주가 급등은 소수의 작전이 아니라 다수 개미투자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서로 독려하며 '사자' 바람을 유도해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공매도 주문을 낸 공룡 펀드들이 보기 좋게 당하고 만 이 상황을 ‘개미의 승리’라며 통쾌해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4,200만 팔로워를 가진 일런 머스크도 26일 관련 트윗을 올려 시간외거래에서 게임스톱 주가가 40%나 더 오르게 만들었다.

□기업가치와 무관한 주가 급등이 정상일 리 없다. 그러나 ‘개미들의 공매도 복수극’과 그에 대한 환호를 뒤집어 보면 그간 기관투자가들이 일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해 왔다는 불만이 개인투자자들에게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 의원 등 진보적 성향의 정치인들은 금융시장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다시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매도 재개를 앞두고 논란이 많다. 개인투자자들이 기관투자가와 공매도에 대해 반감이 큰 것은 미국과 다르지 않다. 2018년 골드만삭스증권이 400억원어치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냈다가 75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일은 실제로 공매도가 악용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공매도 재개에 앞서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2030이 주식투자에 뛰어들고 투자예탁금이 70조원에 가까운 지금 우리나라에서 게임스톱 사건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