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사망·해고·사망... '간접고용' 취재 중에도 노동자는 계속 울었다

입력
2021.01.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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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당하고 있는 현실 절감
원청의 노무비 직접 지급 등 제도 마련 시급

<6·끝>오래된 좌절, 무엇부터 바꿔야 하나


지난해 12월 초부터 약 한 달. 중간착취 문제를 듣기 위해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했다. 그 사이, 우리가 직접 인터뷰 한 노동자나 그 동료에게 일어난 일이다.

2020년 12월14일 : 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의 부고. 발전사와 임금·단체협약을 잠정합의한 날 삶을 등졌다. 유서는 없었다.

2020년 12월31일 : 아파트 경비원 윤기섭(가명·64)씨 해고. 일주일 전 갑자기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2020년 12월31일 : 아파트 경비원 이철희(가명·66)씨 해고.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계약만료라고만 했다.

2020년 12월31일 : 은행 경비원 한재민(가명·46)씨 권고사직. 경비원 업무를 벗어난 업무에 항의하자 권고사직 당했다.

2021년 1월3일 :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하청노동자 산업재해 사망. 현대차 고위직 방문을 앞두고 급히 청소작업을 하다 제조장비에 끼어 사망했다.

2021년 1월6일 : 파견직 사무보조 차영신(가명·54)씨 해고 통보. 1년 재계약을 한 지 두달 만에 해고통보를 받았다.

전국 약 346만명으로 추산되는 간접고용 노동자 중 겨우 100명을, 겨우 한 달 인터뷰했을 뿐인데 계약만료, 권고사직, 자살, 산업재해 사망 이라는 무거운 말들을 마주해야했다. 일터에 남은 사람들은 평안할까. 노동자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었다.

분노 : “먹고 살려니까 어쩔 수 없이 용역업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업체가 하는 일도 없이 월급 떼 먹는 건 너무 괘씸해요!” (은행 경비원 강지선씨·가명·39)

체념 : “파견은 우리나라에 정착된 문화인 것 같아요. 이 구조는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파견직 사무보조 김시은씨·가명·27)

불안 : “기자님이랑 인터뷰했다고 동료들한테 엄청 혼났어요. 가명 써도 용역업체가 나인줄 알까봐 다들 걱정해요.”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가명·69)

정도의 차이일뿐, 모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이 세 가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분노하다가도 이내 체념했고, 당장 내일 어떻게될지 몰라 불안해했다. 올해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언제라도 계약만료, 산재로 일터를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을 그림자처럼 달고다녔다.

분노·체념·불안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곳, 진입하는 순간 중간착취를 피할 수 없는 곳, 그럼에도 저학력자, 중고령자, 여성, 사회초년생 등 노동 약자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곳. 우리가 ‘지옥도(地獄圖)’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이 오래된 간접고용 세계를 어떻게 바꿔야할까. 전문가들이 제시한 대안이다.


① 인건비는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게 하라

전문가들은 중간착취를 막으려면 도급비(노무비, 일반관리비, 경비, 이윤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 중 노동자의 노무비로 책정된 금액은 100% 노동자에게 지급하도록 법으로 제도화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경비 등만 용역업체에 주고, 인건비는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자는 것이다. 현재 용역업체들은 업종별 평균임금인 ‘시중노임단가’를 기준으로 원청으로부터 노무비를 받지만, 노동자들에겐 이보다 훨씬 낮은 최저임금만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동자가 원청으로부터 노무비를 직접 수령하도록 하면 단기적으로는 중간착취를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업종에서는 이 방식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건설업에선 ‘직접지급제’가 법제화돼 공공 공사의 경우 건설사가 노동자의 통장으로 임금을 바로 지급한다. 조선업은 ‘에스크로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원청이 공사대금을 제3자(금융기관 등)에게 예치했다가 하청이 급여내역서를 통보하면 에스크로 계좌에서 노동자 계좌로 임금이 입금된다.

고(故) 김용균씨 사망 후 심각한 중간착취 문제가 드러난 발전소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적정 노무비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시범사업으로 원청인 발전사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무비를 별도의 전용계좌에 지급한다. 다만 용균씨가 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은 공공기관을 만들어 정규직으로 전환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이 시범사업에서 제외됐다.

또 원청이 하청과 맺는 도급계약서에 ‘노무비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조건을 명시할 수도 있다. 권영국 해우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지금은 원청이 노무비가 다른 비용으로 전용되는 걸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지만, 원청이 이런 계약 조건을 넣는다면 용역업체가 이것을 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 파견 수수료와 부과 기간 상한을 정하라

직업안정법(19조)만 해도 직업소개소에서 일을 구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개소가 구직자에게 임금의 최대 1%를 최대 3개월까지만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는 파견 대가(수수료 등)와 수수료 부과 기간에 상한이 없다. 무한정의 중간착취가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파견업체가 떼어가는 수수료 등의 상한 설정이 꼭 필요하다.

수수료 등의 공개 의무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문상흠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노무사는 “노동자와 맺는 근로계약서에 파견 대가(수수료 등)를 명시하도록 법을 개정하면 지금처럼 과하게 수수료를 매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파견업체가 원청으로부터 받는 파견 대가를 노동자에게 ‘서면’으로 알려주도록 하고 있는데,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퇴직금 등을 떼먹기 위한 ‘위장 폐업’ 문제가 심각한 만큼 위장 폐업 후 새 회사를 차려도 고용승계를 해서 근속기간이 인정되도록 할 필요도 있다.


③ ‘사람 장사’ 막으려면 간접고용의 ‘장점’을 없애라

사용주(원청)-고용주(용역업체)-노동자로 구성되는 간접고용에선 노동자만 빼고 모두가 ‘해피’하다. 원청은 노동자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는데다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용역업체는 설비나 자본투자 없이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원청이 이런 장점을 누리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는 원청에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 황선웅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는 “용역업체는 아무 권한도 없는 ‘바지 사장’ ‘직업 소개 브로커’의 역할만 할뿐 독립적인 회사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에 원청에게 임금, 근무조건, 노조와의 공동교섭 등의 의무를 부과해 노동자가 겪는 문제를 함께 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이를 통해 간접고용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원청이 ‘인건비가 싸고 해고가 쉽다’는 이점을 누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간접고용을 사용하는 것이 더 이상 유리하지 않은 환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상시지속업무를 직접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정흥준 교수는 “정부가 공공부문을 정규직화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상시지속업무이면서도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 교수는 단언했다. “이런 나쁜 일자리로 유지되는 사회는 절대 발전할 수 없어요. 정당한 임금을 주고 안정적인 직장을 만드는 데 기업과 사회가 함께 책임을 져야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