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 전문 오프라인 소매업체 게임스톱을 필두로 몇몇 저평가된 '동전주'의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미국 금융 전문 언론은 하나같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의 개인 투자자들이 모인 서브레딧(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WSB)'에 주목했다.
저평가된 주식을 꾸준히 매수하자는 뜻에서 시작한 매수 행렬이, 월가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대한 반감과 겹치면서 들불처럼 번졌다. 그리고 어느 새 세계 금융 시장을 뒤흔드는 '월가 민란'을 만들어낼 만큼 커졌다.
애초 WSB는 월가의 변방에서 주식 시장을 도박장(카지노)으로 보고, 일확천금의 꿈을 노리는 주식 마니아의 모임이었다. 성공 사례는 많지 않았고 스스로를 자폐증 환자(autist)라 부르고, 매입한 주식(stock)은 일부러 오타를 내서 스통크(stonk)라 할 정도다.주식의 가격이 기업 본연의 가치와 동떨어져 있다는 냉소를 가득 담은 표현이다.
이런 WSB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전반기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혼란에 빠진 금융 시장을 구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유동성을 쏟아내자, 금융 시장 곳곳에서 미래의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이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개인 투자자들은 주로 애플이나 아마존, 테슬라 등 대형 기술주를 샀지만, WSB에 모인 일부 '대담한' 투자자들은 일시적 주가 폭등을 노리고 저평가된 종목(동전주·pennystock)들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상장 전부터 잠재성이 있다고 알려진 전기트럭 제조업체 니콜라, 파산 위기에 몰린 렌터카기업 허츠와 백화점 체인 JC페니, 크루즈 운영사인 카니발 등이 이들의 눈에 들었다.
물론 단순히 값이 싸다고 매입을 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투자에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이 지금은 저평가돼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봉쇄가 풀리면 곧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 등이었다.
물론 이들은 많은 개인 투자자가 그렇듯 냉정한 현실을 맛봐야 했다. 허츠는 결국 상장폐지됐다. 니콜라는 사기 논란에 휩싸여 창업자가 기업 경영에서 이탈하는 사건을 겪었다.
카니발 주가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계속 지지부진하지만, "지금이 저점이고 사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코로나19의 위협이 사라지고 다시 주가가 치솟을 것이란 희망고문 때문이다.
오프라인 게임 매장 체인인 게임스톱 역시 이런 성공하지 못할 '동전주 베팅' 중 하나였다. 코로나19가 확산 중인데다 게임의 유통은 이미 온라인이 대세인 상황에서 오프라인 매장은 사양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론이다.
레딧 이용자명 'DeepF**kingValue'를 쓰는 한 투자자는 2019년부터 WSB 게시판에 자신이 꾸준히 게임스톱에 투자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처음엔 WSB에서조차 이 이용자는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다른 WSB 이용자들도, 지난해 9월 유명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츄이'라는 애완 동물 관련 온라인 소매업체를 성공시킨 라이언 코언이 게임스톱 지분 13%를 인수했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코언 사단'은 올해 1월 11일 직접 이사진에 합류하면서 디지털 소매업체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고, 다른 WSB 투자자들이 이를 호재로 보며 본격적으로 '사자' 대열에 합류했다.
게임스톱 주가가 "이상하게" 오르자 공매도 세력이 움직였다.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 시트론리서치는 게임스톱 매수 진영에 공개적으로 선전 포고를 했다. '급상승 동전주' 사냥에 열을 올리던 멜빈자산운용도 공매도를 강화했다.
그러자 그동안 공매도 진영에 시달리던 WSB 이용자들은 발끈했다. 그리고 힘을 합쳐 게임스톱을 더 열심히 사들였다. 공매도 헤지펀드와 개인 투자자들의 한판 전쟁이었다.
현재 시점에서 전쟁의 승자는 일단 WSB다. 공매도를 한 주식의 주가가 오르면 해당 주식을 매입해 갚아야 하는 '숏 커버링' 때문에 주가가 더욱 치솟은 것이다. 결국 시트론리서치와 멜빈자산운용은 공매도를 청산했다고 발표했지만, 지금도 일부 투자자들은 "거짓 발표"라며 계속 매수를 외치고 있다.
월가도 가만 있지만은 않았다. 로빈후드와 인터랙티브브로커, 위불 등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거래를 중개하는 기업들이 28일(현지시간) 한꺼번에 게임스톱을 비롯한 WSB 관련 종목을 추가 매입 불가로 묶어버렸다.
개인들이 추가로 돈을 넣을 수 없게 되면서 이날 게임스톱 주가는 급락했지만, 아직 급등 이전 수준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 등지에 '팔지 말라(Do Not Sell)'는 해시태그를 뿌리며 전열을 다졌다.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코너 센은 "로빈후드 등이 게임스톱의 매수를 일시적으로 막은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사기일 수도 있지만 자비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게임스톱 같은 주식의 운명이 뻔하기 때문이다. '숏 커버링'으로 인해 주가가 빠르게 오르는 현상을 '숏 스퀴즈'라고 하는데, 거품이 빠지면 결국에는 주가가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전례도 많다. 1998년 방송 편집 테이프를 판매하던 소매업 체인 'K텔'은 공매도에 매수로 대응하면서 한 달도 안 돼 주가가 100배 가까이 뛰었지만, 결국 회사 자체가 무너졌다.
2008년 10월 금융위기 당시 폭스바겐은 숏 스퀴즈 때문에 하루 동안 세계 시총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매도 세력이 전체 지분의 12%를 공매도하자 최대 주주인 포르쉐가 대규모 매입으로 역공했다. 치솟은 주가를 감당하지 못한 공매도 세력들이 주식 구하기에 나서면서 2거래일 만에 주가가 4배로 뛰었다. 물론 포르쉐가 매입한 지분의 상당량을 내놓으면서, 주가는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갔다.
블리클리 어드바이저리 그룹의 최고 투자 책임자인 피터 부크바는 28일 CNBC에 출연해 "레딧 반란은 하나의 거품일 뿐"이라며 "공매도 청산으로 인해 치솟은 주가는 결국 거품이 터지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지금은 공매도 세력이 돈을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돈을 더 많이 잃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WSB에 모인 개인 투자자들도 이런 결과를 알고 있는 분위기다. 단지 이들의 성격상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할 뿐이다.
이들이 공유하는 구호를 보면 답이 나온다. 'YOLO',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이다. 지금처럼 미친 숏 스퀴즈는 인생에 단 한 번뿐이고,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것은 일단 올라타서 최선을 다해 수익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소셜 캐피털'의 창립자이자, WSB를 옹호하는 유명 투자자 중 한 명인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레딧의 개인 투자자들은 때로 헤지펀드보다 더 정확하게 분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26일 트위터에서 레딧 이용자들의 추천을 받고 게임스톱의 콜 옵션(주가 상승 시 주가보다 싸게 살 수 있는 조건부 매수)을 매입한 뒤 27일에 청산해 수익을 봤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