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생명·곡선의 도시를 표현... 전주의 첫인상을 바꾸다

입력
2021.02.19 04:00
15면
<34> 전북 전주 '첫마중길'
전주역에서 백제대로 850m 구간
차선 줄이고 가로숲길 등 만들어


'전통문화의 도시' 전북 전주에는 귀한 손님이 오면 맞이하는 아주 특별한 장소가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전주만의 특색이 드러난 곳이다. 전주의 관문인 전주역 앞 광장을 지나면 도로 중앙에 울창한 나무가 심어진 숲 광장과 곡선형 도로가 나온다. 전주의 얼굴로 자리잡은 '첫마중길'이다.

전주 첫마중길은 옛날 귀한 손님이 오는 날에 동네 어귀에 나가 맞이하는 전통을 그대로 살린 공간이다. 단정한 옷을 입고 환한 얼굴로 길손을 반기듯 전주를 찾는 방문객에게 전통이 묻어나는 전주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성한 길이다.


전주의 얼굴 첫마중길

대부분 도시의 관문은 곧게 뻗은 넓은 도로지만 첫마중길은 넓은 숲 광장과 곡선형 차로가 이색적이다. 드넓은 대로 중간에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오가는 넓은 광장과 숲이 있고, 차들은 가장자리 도로를 서행하며 빠져 나간다. 빠른 속도로 숨차게 지나다니는 차들로 꽉 찬 다른 대도시 광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첫마중길은 '사람·생태·문화'의 가치를 담은 전주의 얼굴이다. 전주시는 해마다 1,000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전주의 첫인상을 바꾸기 위해 자동차로 가득했던 전주역 광장에서 우아동 명주골사거리까지 백제대로 850m 구간을 문화광장과 명품 가로숲길이 어우러진 사람을 위한 광장과 거리로 탈바꿈시켰다.

첫마중길 조성 사업은 2015년 시작해 2017년 12월 26일 준공했다. 당시 산림청의 도시숲 조성 사업 공모에 선정돼 사업비 60억원을 확보, 백제대로 8차선을 6차선으로 줄이고 도로중앙에 너비 15~20m, 길이 720m 규모의 가로숲길을 만든 것이다.



전주역 광장에서 첫마중길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예향의 도시답게 전주형 이동갤러리인 '꽃심'이 관광객을 반긴다. 33㎡ 남짓한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전시장은 한 면을 통유리로 바꿔 누구나 숲길을 걸으며 유리창 너머에 전시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최근 전시회를 연 정인수 작가는 "유리창 밖에서 작품을 감상하다가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와 이것저것 묻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관광객에게 전주를 알릴 수 있는 전시회를 갖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

꽃심 앞에는 우리 전통정원에서나 볼 수 있는 얕은 연못이 있다. 분수대와 징검다리가 있는 이 연못에 물을 채우면 첫마중길 일대가 거울처럼 비춰진다 하여 '거울연못'이다. 여름철 물총축제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동갤러리를 지나 몇 걸음 옮기면 전주의 첫마중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첫마중길의 의미와 나무를 기증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전주 첫마중길은 자동차보다는 사람의 도시, 콘크리트보다는 생명의 도시, 직선보다는 곡선의 도시를 지향하는 전주시민의 길이자 전주의 첫인상을 심어주는 길입니다. (중략) 고사리손 아이들의 돼지저금통부터 먼저 떠난 아들을 기억하는 엄마의 마음까지 수많은 시민들의 진심을 나무에 담았습니다. 그 진심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우거지는 곳, 이 곳은 '가장 인간적인 도시'로 가는 길, 전주의 첫마중길입니다."

관광객을 맞이하는 시민들의 정성과 소망이 고스란이 담긴 글이다. 첫마중길은 자발적인 식수운동을 통해 시민 710명이 1억6,700만원을 모아 심은 이팝나무 100그루와 느티나무 230그루가 명품숲을 이루었다. 중앙에는 수령이 수백년이 된 팽나무 2그루가 고향마을 당산나무처럼 우뚝 서 있어 눈길을 끈다. 가로수 앞에는 헌수자의 소망이 담겨 있는 작은 표지석이 놓여 있다.

첫마중길은 자동차보다는 사람을 위한 거리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자동차로 가득차 삭막했던 전주역 앞 백제대로의 차선을 줄이고 직선도로를 'S'자 곡선으로 변경해 차량 속도를 시속 60㎞에서 40㎞로 낮췄다. 도로와 인도 폭을 줄인 도로 중간에는 보행광장과 가로숲을 조성했다. 보행광장이 생기면서 도로를 중심으로 양분됐던 주변 상가와 주택가 주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다. 주민 왕래가 잦아지면서 양쪽 상가와 주택가는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관광객도 단순히 지나치는 공간이 아닌 머무르고 즐기고 느끼는 곳으로 다시 태어났다.


첫마중길에는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버스승강장 3곳이 있다. 지역작가와 함께 만든 예술이 있는 승강장이다. 전주역 버스승강장 지붕에는 대형 모자와 가방이 걸려 있는 '자! 이제 떠나볼까?'라는 작품이, 전기안전공사 승강장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특별한 날'이란 작품을 설치했다.


관광객 몰리면서 상권엔 온기

그동안 한옥마을에 가기 위해 전주역을 찾은 관광객들이 그냥 스쳐가는 길에서 즐기고 머무르는 공간으로 변하자 첫마중길 주변 상권에도 산뜻하고 멋진 수제가죽공예나 한복가게 등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이곳에서는 문화장터와 개미장터, 작품전시회,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수시로 열린다. 이 중 한복축제가 대표적인 행사다. 지난해 10월 비대면으로 열린 '한복오감' 행사에는 온라인 접속자가 4,000여명에 달할 정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청년을 중심으로 한 창업도 늘고 있다. 첫마중길 주변에는 청년들을 위한 가상·증강현실(VR·AR) 제작지원센터가 들어서 콘텐츠 제작장비 및 시설 지원은 물론 입주기업의 기술 상용화와 마케팅까지 지원하고 있다. IT산업분야 전문인력 양성과 스타트업 발굴 등에 힘쓰고 있다. 길 건너편에는 청년들을 위한 디지털배움터도 있다. 전주시는 청년 창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줌으로써 청년들의 도약과 성장으로 이어지는 청년행복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전주시는 전주역권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하나로 2022년 10월까지 155억원을 들여 우아1동 주민센터 인근에 43㎡ 규모의 대학생 전용 '청년창업주택' 80호를 지어 공급할 계획이다.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첫마중길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첫마중길에는 여행자 도서관도 짓고 있다. 컨테이너박스를 활용해 120㎡ 규모로 조성 중인데 여행자 라운지와 아트북 전시, 동네책방 추천도서 전시 공간이 들어선다. 관광안내 서비스와 여행서적 열람, 무료 와이파이 및 충전, 짐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행자를 위한 공간이다.

전주의 첫마중길은 차량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의 안전을 강화한 '교통정온화(Traffic Claming)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교통정온화는 '교통을 진정시킨다'라는 의미로 1970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다. 보행자에게 안전한 도로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물리적 시설을 설치해 자동차의 속도와 통행을 줄이는 기법이다.


교통사고 줄이는 역할까지

차량속도가 줄자 첫마중길 조성 전인 2016년에 비해 2018년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20% 감소하고, 중대사고는 40%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주시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 받아 2019년 한국정책학회로부터 우수정책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아시아경관디자인학회가 주관한 '아시아도시경관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이 길은 야간에 화려한 불빛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가로수에 형형색색의 LED 조명을 달아 빛의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야간에는 은하수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한 조명이 불을 밝힌다.

첫마중길 활성화를 위해 설치한 전주역세권 도시재생 현장센터도 한 몫을 거들고 있다. 현장센터는 지역공방과 연계한 야외전시회를 개최하고, 주말에는 프리마켓과 버스킹 공연을 주선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복을 입은 고객에게 음식값과 숙박비를 할인해 주는 '한복입고가게' 행사에는 주변 음식점과 숙박업소, 공방 등 50여개 업체가 동참했고, 지역공방과 청년기업, 주민이 생활한복 자투리 천으로 만든 '첫마중길 한복마스크'는 관광객에게 인기상품이 됐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첫마중길은 관광객을 위해 화장한 길이 아니라 전주의 원래 얼굴을 회복하는 길"이라며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닌 길과 광장, 사람과 자연,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문화공간이다"고 말했다.

전주=글 사진 김종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