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정치권이 목표 건강보험보장률을 또 무리하게 높여 내세울까 아찔해진다. 의료제도는 국민의 ‘건강수준 향상’을 1차적 목표로 한다. 건강보험제도는 의료제도에의 ‘자금조달’을 주된 기능으로 한다. 자금조달이 '건강수준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도로 충분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험료를 많이 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인지상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보건기구(WHO)는 공동 작업으로 국가 단위의 보건의료 관련 통계들을 매년 발표한다. 가장 클릭 수가 많고 인용이 많은 지표는 단연 'GDP 대비 전체 의료비 비율'이다. OECD 국가 평균은 9%, 한국은 8%다. 36개국 중 23위다. 한데, 지난 10년간 증가율은 1위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자금조달의 책임을 지는 건강보험이 제 역할에 충실했다.' 또 하나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너무 급속히 커지고 있다.'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다를 것이다.
악마를 잡으려면 디테일을 알아야 하니, 건강보험제도의 재원 구성을 봐야 한다. 2019년 건강보험 총진료비는 103조원. 그중 66조원을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었다. 그래서 '건강보험보장률'은 64.2%다. 나머지 37조원은 환자가 본인부담으로 직접 지불한다. 평상시에 건강보험료로 낸 돈으로 64%를 충당하고 의료이용 현장에서 나머지 36%를 내는 구조다.
문제는 '건강보험보장률'이 어느덧 정치의 장에서 통용되는 용어가 되어 있다는 점. 어느 정당은 70%를 달성하겠다, 어느 대통령 후보는 80%를 달성하겠다고 공약(公約)했다. 하지만 보장률은 모든 정부에서 예외 없이 정체 상태. 그야말로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정권을 어느 정당이 잡든 정치적 공방의 주객이 바뀔 뿐. 대동소이다. 아무리 돈을 퍼부어서 분자를 높이려 해도 분모가 그 이상으로 커지는데 비율이 쉽게 오르겠는가. 이 '지키지 못할 보장률 수치' 때문에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실질적 성과'마저 매몰되는 형국이다.
건강보험보장률을 높이려면 보험료를 높여서 본인부담을 낮추어야 한다. 보험료는 본인부담보다 '형평성'이 높은 재원이다. 그래서 보장률이 높은 것이 선호된다. 지난 십여 년 국민이 보험료율 인상을 수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이 90% 이상인 의료제공체계에서 보장률을 무리하게 높이면 전체 의료비가 너무 높아지는 것이 확인되었다. 본인부담이 너무 낮으면 의료이용이 필요 이상으로 늘고, 이는 다시 '보험료' 인상의 부메랑이 되어 온다. 교각살우를 피하려면 국민을 위한 적정 보장률을 찾아내야 한다. 돌아올 정치의 계절에는 건강보험보장률을 놓아주는 성숙한 정치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