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육촌 소저를 마구간에 넣었고 말에게 약을 먹여 (…) 손 대인께서 모든 하인에게 마구간 밖에서 구경하도록 했답니다.”
웹소설 플랫폼 네이버시리즈를 통해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중국 웹소설 ‘폐후의 귀환’의 한 대목이다. 다운로드 수 1,723만을 달성했을 정도의 흥행작이다. 잔혹한 고문을 빈번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 청소년유해물이 아닌 15세 이용가로 제공되고 있다.
2019년 기준 중국 내 인터넷 문학 시장 규모는 한화로 약 3조4,686억원에 달한다. 2013년 대비 약 6배 성장한 수치다. 이런 가파른 성장에 힘입어 우리나라에도 약 100여개의 중국 웹소설 작품이 진출해있다.
문제는 이처럼 쏟아지는 중국 웹소설 대부분이 강간이나 성적 고문처럼 높은 수위와 폭력, 심지어 역사 왜곡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검열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네이버시리즈에서 제공중인 또 다른 중국 웹소설 ‘소경대인의 반려생활’은 어린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소아성애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체 이용가로 서비스됐다. 이에 대한 독자들의 비판이 잇따르자 네이버시리즈는 문제가 되는 내용을 삭제 및 수정하고 ‘15세 이용가’로 등급을 조정했다.
역사 왜곡도 빈번하다. 국내 번역 출간 과정에서 삭제되기는 했지만, 웹소설 ‘청령도등’의 원문에는 삼국시대 나당 전쟁이 신라의 항복으로 끝났다고 나온다. 또 다른 웹소설 ‘동궁’은 “고려인들은 몸집이 왜소하다”거나 “고려인들은 시끄럽고 규칙과 법도를 지키지 않는다는” 등의 묘사가 문제가 돼 연재가 중단됐다. 이외에도 ‘후궁덕비’, ‘비빈저직업’등 다수의 중국 웹소설 작품에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중국 웹소설이 제대로 된 사전 검열 없이 무방비하게 국내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검열 구멍은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인력 부족에서 비롯한다. 국내에 번역되는 해외 작품은 모두 이 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2019년 기준 위원회 직원 여섯 명과 상근 위원 두 명이 심의한 작품은 총 1만8,626개에 달한다. 주말을 제외한 근무일 260일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한 명이 하루에 약 9권의 작품을 심의한 셈이다. 게다가 웹소설의 경우 서비스 업체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제대로 된 작품 물량 파악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출판사나 웹소설 플랫폼의 자체 검열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직접 읽어보고 문제가 있는 작품은 플랫폼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연재에서 배제시키고 있긴 하지만, 미처 살펴보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약 7개의 중국 인기 웹소설을 독점 공개중인 한 웹소설 플랫폼은 위와 같은 문제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뚜렷한 재발 방지책이나 해결책이 내부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다.
국내에 서비스 되는 대부분의 중국 웹소설은 이미 현지에서 완결이 이뤄진 작품이다. 인기 검증이 끝난 작품 위주로 수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재 도중 문제가 제기될 경우 즉각적인 수정이 가능한 국내 작품과 달리, 해외 작품은 수정 시에 당초 계약과는 다른 추가 협상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어차피 수정이 어렵다’는 인식이 공유되다 보니 국내 작품보다 느슨한 잣대가 적용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독자는 “국내 작품이라면 당연히 문제 됐을 내용도 중국 웹소설에는 버젓이 등장한다”고 꼬집었다.
검열 기관과 제공 업체의 자정 작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엇보다 독자들의 감시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는 강조했다. 임대근 한국외대 중국어통번역학과 교수는 “기안84의 만화에서 문제가 됐던 일부 표현이 독자들의 지적으로 수정됐던 것처럼, 팬덤이 비평의 역할을 하며 시장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