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권 문제, 내정간섭 말라" 하더니… 호주에 굴욕 안겼다

입력
2021.01.26 17:30
중국-호주 갈등 국면 의식한 제스처로 풀이

북한이 유엔에서 호주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인권 선진국 축에 드는 호주로선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인권 탄압 국가로 낙인찍힌 북한으로부터 인권을 개선하라고 지적받는 굴욕을 당한 셈이 됐다.

26일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NGO)인 유엔워치(UN Watch)에 따르면, 한대성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UNHRC) 국가 별 정례인권검토 회의에서 호주 사회의 인종 차별 문제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한 대사는 "깊이 뿌리 박힌 인종 차별과 공공 영역에서 민족·인종·문화·종교적 배경에 기반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를 끝내라"고 했다. 한 대사는 이어 "구금 장소에서의 잔학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멸적인 대우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동시에 "장애인의 선거 참여권을 포함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강조했다.

특정국의 인권 문제에 왈가왈부 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입장을 취해온 북한이 유엔에서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를 걸고 넘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호주에 앞서 정례인권검토 대상국이었던 네팔이나 레바논 오스트리아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던 북한이 유독 호주를 겨냥한 것은 중국과 호주 간 갈등 국면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 문제로 시작된 양국 갈등은 호주의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다. 뉴질랜드와 프랑스 등 우방국들이 호주를 지원하는 등 국제전 양상으로 치닫자, 중국의 우방국 북한이 호주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반인권적 국가라는 비판을 조금이나마 피하기 위한 외교적 제스처일 수도 있다. 인종 차별 문제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정상 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싶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편, 호주 인권단체인 워크프리재단이 2018년 발표한 세계노예지수(GSI·Global Slavery Index)에 따르면, 정부 대응 부문에서 호주는 미국, 영국, 스위스 등과 함께 2순위 그룹인 BBB등급을 받았다. 북한은 이란, 리비아 등과 함께 최하위 등급인 D등급으로 분류됐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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