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넘기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이렇게 되면 김 전 차관 출금 의혹 사건이 고위 공직자 전담 수사기관으로 출범하는 공수처의 '1호 사건'이 될 가능성도 커졌다. 공수처 출범에 따라 고위공직자 신고시 신원을 요구하지 않는 권익위로 사건이 몰릴 것으로 보여, 권익위의 위상과 역할도 덩달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권익위원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에 친여 성향 인사들이 많아 권익위 판단을 두고 정치적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26일 권익위는 "(김 전 차관 출금 의혹) 조사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관계 법령에 따라 신고자 보호조치, 공수처 수사의뢰 여부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역시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김 전 차관 출금 의혹은) 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어, 실제 이 사건이 공수처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수처가 수사할 첫 번째 사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권익위는 최근 부패방지 및 권익위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법)을 개정해 권익위가 직접 고발할 수 있는 기관에 공수처를 추가했다. 현행법상 권익위는 고위공직자의 부패 신고를 접수해 사실관계를 1차로 확인한 후, 감사·수사 또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사기관에 이첩한다. 권익위는 신고자 및 협조자에 대한 비밀보장과 신변보호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신원 노출을 우려하는 이들이 권익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권익위는 2008년 출범 이후 공직자·기업과 관련한 굵직한 신고를 다수 처리해 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프로포폴 상습투약 의혹(지난해 1월 검찰 이첩),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가족의 보조금 횡령 의혹(지난달 경찰 송부), 은수미 성남시장 부정채용 의혹(지난달 조사 착수) 등이 최근 1년간 권익위에 접수된 주요 사건이다.
권익위는 수사나 조사가 필요한 사건을 수사기관에 보내는데, 어디로 어떻게 보낼 지를 결정하는 판단 자체가 사건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에 대해 국가기관이 '1차적 판단'을 했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1차 조사를 통해 제보의 신빙성이 높아 급히 처리해야 하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하고, 신빙성이 낮으면 '송부'하는 등 사안의 경중을 별도로 판단한다.
권익위가 실제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한 사안 다수는 수사 과정뿐만 아니라 재판에서도 유효한 근거로 활용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 사건. 권익위는 "삼성이 소송비 명목으로 미국법인을 통해 이 전 대통령 측에 건넨 뇌물이 51억여 원 더 있다"는 신고를 받아 2심 재판 중 검찰에 이첩했다. 검찰은 이첩 내용을 바탕으로 공소장의 뇌물액 규모를 변경했고, 이는 재판부가 형량을 징역 15년에서 17년으로 올린 주요 근거가 됐다.
신고 내용에 따라 사건 수사를 검찰에 맡길 지 경찰에 맡길 지를 결정하는 것도 권익위 몫이다. 경찰 공무원과 유흥업소 버닝썬의 유착 의혹 제보를 받은 권익위는 이 사건을 경찰이 아닌 검찰로 이첩했다. 경찰관이 연루된 사건이기 때문에 수사의 중립성을 우려한 조치였다.
부패 사건의 접수와 처리에서 막중한 역할을 해 온 권익위의 위상은 공수처 출범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신고 접수 자체가 늘 것으로 보여, 권익위는 부패 신고 관련 경험이 많은 조사관을 중심으로 대응팀을 꾸렸다. 또 검찰과 경찰뿐이었던 수사기관에 공수처가 추가되면서, 권익위의 재량권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권익위원장에 여당 출신 정치인이 자주 임명돼 왔다는 점에서, 사안에 따라 권익위 자체가 정쟁이나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야권에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패스트트랙 재판에 대한 권익위의 유권해석을 두고 크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신고 조사나 유권해석은 객관적 절차를 거쳐 결론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