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서 뒤집힌 임대료

입력
2021.01.25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년 전 5억원이었던 전세 시세가 8억원이 됐다면 얼마로 재계약을 해야 할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5%로 정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5억2,500만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집이 2019년 10월 23일 이전 주택임대사업자 물건으로 등록이 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은 주택임대사업 등록 당시의 임대차계약이 기간 만료로 갱신될 때엔 집주인이 보증금을 시세대로 올려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최초 임대료'라 한다. 이후 보증금 인상의 기준점이 된다.

□지난해 7월 31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며 임대료 5% 상한룰과 민간임대주택특별법상 최초 임대료가 정면 충돌하게 됐다. 세입자는 5% 상한룰에 따라 가급적 전세 보증금을 낮추는 게 유리하고, 집주인은 '최초 임대료'를 근거로 임대료를 시세대로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세입자와 집주인 간 갈등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해설집을 통해 최초 임대료라 하더라도 5% 이상 올릴 수 없다는 유권 해석을 내 놨다. 그러나 특별법보다 일반법이 우선하는 결과가 된 국토부의 해석은 이후 더 큰 혼란을 불렀고 결국 법원 소송까지 이어졌다.

□지난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전세 보증금을 5억2,500만으로 해야 한다는 세입자와 8억원으로 올릴 수 있다는 주택임대사업자의 분쟁에서 조정을 통해 집주인의 손을 들어줬다.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한다는 원칙, 세입자만큼 집주인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는 상식, 전세 대란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현실 등을 반영한 재판상 화해로 풀이된다. 국토부는 정식 판결은 아니라며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당황하는 기색이다.

□여당의 일방적 주도로 만들어진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가 사라지고 보증금이 급등하며 편법과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계약서상 보증금 인상은 5%지만 시세와의 차액만큼 세입자가 주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차용증을 쓰는 경우도 있다. 집주인이 수천만 원의 뒷돈을 요구해도 울며 계약을 하는 일도 없잖다. 똑같은 집도 신규냐 갱신이냐에 따라 보증금이 수억 원씩 차이난다. 이런 가운데 법원도 임대차 정책에 제동을 건 셈이다. 아무리 급하고 선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법은 지키는 게 법치주의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