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전염병 바이러스가 440년 넘게 이어온 아름다운 전통마저 가로 막았다.
강원 강릉시는 전통의 설 풍습인 성산면 위촌리 도배식(都拜式)식이 올해는 열리지 않는다고 25일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좀처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최소 50여명 이상이 모여야 하는 해당 행사들을 부득이하게 취소해야 했다"고 말했다.
도배례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행사는 설 명절 주민들이 모여 마을 어르신에게 올리는 합동세배다. 조선 중기인 1577년 마을 주민들이 대동계를 조직한 후 440년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예향(禮鄕)의 고장'인 강릉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전통 가운데 하나다.
전통을 계승한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도배식이 열리는 날이면 마을 주민들이 한복과 두루마기 등 전통 의복을 챙겨 입고 촌장을 비롯한 어른들께 세배를 올린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이후 촌장 가족들과 마을 부녀회가 떡국과 전 등 음식을 마련해 함께 나눠 먹으며 덕담을 나누는 행사로 잘 알려져 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국내는 물론 해외언론도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위촌리 마을에선 지난해 설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지 않아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도배식을 진행했다. 올해 최종춘(94) 촌장을 모시고 열기로 했던 도배식은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거리두기 2단계와 5인 이상 집합 금지로 인해 개최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도배식이 취소된 건 한국전쟁 기간과 가축전염병인 구제역이 확산인 2011년 이후 세 번째다.
위촌1리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엄명섭(76) 도배식 총무는 "해마다 주민들이 모여 어르신들의 건강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행사를 열었는데 올해는 불가피하게 행사를 취소했다"며 "주민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위촌리는 물론 강릉지역 20여개 마을에서 열리는 합동도배식도 코로나19 여파로 모두 취소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강릉 남대천 일원에서 열기로 했던 대표 정월 대보름행사인 망월제도 열리지 않는다.
강릉시는 "수백년을 이어온 전통행사마저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혀 씁쓸하다"며 "지역 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