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방역, 컨트롤타워가 안 보인다

입력
2021.01.29 04:30
26면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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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보고 정리를 하고 답을 내고, 그다음엔 지침에 안 나와 있는 결론을 낼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해요. 근데 그럴 만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없었어요."(질병관리본부 관계자)

2016년 7월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473쪽짜리 ‘메르스 백서’에 나오는 글이다. 이 백서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종식된 후 6개월에 걸쳐 현장 전문가와 대응인력들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전문가들이 느낀 생생한 소회가 많이 담겨 있다.

이들의 지적은 하나로 모아진다. 리더십, 즉 컨트롤타워 부재가 그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주도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와 민관합동대책반, 국민안전처의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와 즉각대응팀TF 등이 산발적으로 구성돼 기능 중복과 업무 혼선이 많았다는 것이다. 설문 응답자 절반 이상은 ‘보고대상이 불분명’(33%)하고 ‘보고대상이 많음’(21.3%)을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는 정부 부처 사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엇박자로도 이어졌다. 복지부와 교육부는 학교 휴업이나 휴교 조치를 두고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에 대해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 결과 보건당국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사실 이런 난맥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발한 초기에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중국 우한시에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을 데려오는 문제를 두고 외교당국과 보건당국은 엇갈린 메시지를 보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확진자 동선을 서로 다르게 발표해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다.

다행히 혼란은 조기에 수습됐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중앙사고수습본부장을 맡고 질본(현 질병관리청)은 중앙방역대책본부를 구성해 '투톱' 체제로 적극적인 방역 조치에 나섰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 신뢰를 쌓아갔다. 'K-방역'이란 이름으로 세계의 주목도 받았다. 메르스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코로나 사태가 1년을 넘어선 지금 K-방역의 위용은 빛을 잃어가고 있다. 한 발 늦은 방역조치로 3차 대유행을 막지 못했고, 환자가 급격히 늘자 '병상대란'이 벌어졌다.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대기하다 수백 명의 환자가 숨진 '요양병원 참사'나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마스크도 제대로 보급을 못해 1,200명의 확진자가 나온 '동부구치소 사태'는 방역 실패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문제는 수개월째 같은 잘못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벌어진 IM 선교회발(發) 집단감염은 동부구치소 사태의 '시즌2' 격이다.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미인가 교육 시설들이 방역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위기 경보가 수차례 울렸지만, 학원인지 학교인지 종교시설인지 명확지 않다는 이유로 지자체와 교육청 등이 책임을 미루다 사태를 키웠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에 어느 순간 희미해진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치소 사태를 겪은 후 또 다른 방역 사각지대는 없는지,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았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까진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전체를 통제하며 모든 책임을 지고 끌고 나가는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지적, 몇 년 뒤 쓰여질 '코로나 백서'에서 또 보고 싶진 않다.

유환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