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했다가 체포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될 위기에 놓인 자기들의 지도자를 궁지로 몰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의회로 향했다”고 수사 당국에 털어놓으면서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6일 의사당에 들어가 난동을 부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 중 적어도 5명이 연방수사국(FBI)에 당시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고 진술했다.
뿔 달린 털모자를 쓰고 얼굴에 페인트를 칠한 채 폭동에 가담해 ‘큐어넌(극우 음모론 단체)의 샤먼(주술사)’으로 불린 제이컵 앤서니 챈슬리는 FBI 조사 과정에서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6일 워싱턴에 갔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이 발언을 공소장에 넣었다. 챈슬리의 변호인은 “챈슬리가 자기 대통령의 요청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다른 지지자의 진술도 비슷한 취지다. 난입 사태 당시 경찰관에게 소화기를 던져 기소된 펜실베이니아주(州) 출신 전직 소방관 로버트 샌퍼드의 진술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다”는 거였고, 켄터키주 남성 로버트 바우어와 그의 사촌인 에드워드 헤멘웨이 역시 FBI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의사당으로 행진했다”고 말했다. 깨진 의사당 옆에 선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텍사스주 출신 부동산 중개업자 지나 라이언은 지역방송국 인터뷰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을 따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트럼프)는 우리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요청했다”고 고백했다.
이런 일관성이 탄핵 심판을 앞둔 상원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AP의 분석이다. AP는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칙이 엄격한 형사 재판과 달리 상원은 원하는 건 무엇이든 고려할 수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이 지지자들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상원이 판단하게 하는 데 FBI가 확보한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할 개연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프랭크 보우맨 미 미주리대 법학 교수도 “지지자들의 진술은 트럼프가 말하고 행하는 일을 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기대하는지를 보여준다”며 탄핵 심판 때 진술이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 대선 결과를 확정하는 연방의회 합동회의 직전 연설을 통해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을 부추겼다는 ‘내란 선동’ 혐의로 의회의 탄핵 소추를 당했고 13일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했다. 상원의 탄핵 심판은 2월 둘째 주에 시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