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입력
2021.01.24 17:00
26면

편집자주

학계와 정계를 넘나들며 이론과 실물경제를 두루 경험한 필자가 경제와 금융 분야 현안을 깊이있게 짚어드립니다.


자유무역, 명목성장에도 불평등은 심화
감세가 경제성장주도 주장 회의론 증가
'시장이 국가를 위해 존재' 의미 새겨야



서강대에서 33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정년하면서 2015년 8월 '주류학자의 참회록'이란 제목으로 고별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몇 몇 회사에 합격하여 골라서 취업하던 졸업생들에 비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학생들을 보며 너무 미안하여, 그동안 나름 한국 경제 성장 발전에 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던 사람으로서 내 주장에 대한 반성문이었다.

GDP가 성장하면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이 좋아지리란 생각에 자유 무역은 좋은 것이고 법인세나 금리는 낮추고, 무조건 규제는 풀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명목 성장은 이루어졌어도 우수한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불평등은 심화되어 많은 국민의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을 보며 학자로서의 자괴감에서 토해냈던 처절한 반성문 성격의 고백이었다.

이러한 자괴감은 지금껏 이어져 사회의 경제 불평등 문제 해결에 천착하던 중, 최근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부부 경제학자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책을 읽으며 그 내용에 많은 공감을 느꼈다.

이 부부 경제학자는 많은 실증 연구를 통해 일부 학자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에 과감한 비판을 가한다. 많은 경제학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주어 봐야 그들은 더 나태해지고 직장을 구하려는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살충제를 바른 모기장을 공짜로 분배하였더니 말라리아에 의한 사망자 수가 75% 이상 감소한 사례를 좋은 경제학의 표본으로 제시한다.

이들이 제시한 나쁜 경제학은 부자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주는 성장지상주의와 복지 프로그램의 축소를 주장하고, 정부는 부패하고 무능한 존재라며 시장 만능주의를 주창한다. 그 결과 지나친 불평등을, 그리고 맹렬한 분노와 무기력한 패배감이 뒤섞인 상태를 야기했다고 비판한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세계화가 낳은 미국의 러스트 벨트가 겪고 있는 고통을 예시하며, 자유무역이 세계 모든 시민의 후생을 증진시키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많은 경제학자가 감세를 주장하지만 감세정책이 반드시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그들은 회의적이다. 1936년부터 1964년까지 미국의 최고 세율이 77%가 넘었고 그 기간 중 절반은 90%가 넘었다. 1965년 민주당 정부에서 70%로 낮아졌고 그 후 30% 수준에 이르렀다. 레이건의 조세 감면이나 클린턴의 최고세율 인상, 부시의 세금 감면이 장기적인 성장률에 그다지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몇 년 전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도 여러 저서에서 이들과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 그는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들은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산업화에 성공했음에도, 개발도상국에는 자유무역을 요구한다고 비판한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두 부부 경제학자의 주장과,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는 장 교수의 주장을 경청해 볼 만하다.

명분에 얽매여 시장에서 작동하지도 못할 정책을 밀어붙여 정책 실패를 하여서도 안 되겠지만, 시장이 만능은 아니며, "국가가 시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마르코 루비오의 주장에 귀 기울일 만하다. 시장이 실패할 때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개입마저 사회주의니, 반시장주의니 비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장 지상주의에 함몰된 무조건적인 감세 주장, 촘촘한 사회 안전망에 대한 대책 없는 고용 유연성의 주장,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문제마저 친기업이란 명분하에 규제 완화만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베너지와 뒤플로 책을 추천하고 싶다.

최운열 서강대 명예교수ㆍ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