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불법 출국금지(출금) 의혹’과 관련해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장은 지난 2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본보 21일 자 1, 2면)에서 이 같이 말했다. 2019년 3월 말 김학의(65) 전 법무부 차관 긴급출금 조치의 위법성 논란을 두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가운데, 해당 조치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판례를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판례는 한 세금 미납자가 낸 출금처분취소 소송에 대한 2013년 대법원 판결이다.
21일 해당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당시 대법원은 국세청장 요청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내린 출금 처분에 대해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출금 대상이었던 원고(세금 미납자)가 5,000만원 이상의 국세를 체납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도피를 위한 해외 출국’을 우려할 만한 정황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출국금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차 본부장이 이 판례를 소개한 건 ‘출금 요청 요건’과 ‘출금 처분 요건’의 차이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문에는 “출금 요청이 요건을 구비하지 못했다는 사유만으로, 출금 처분이 당연히 위법하게 되는 건 아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1ㆍ2심의 판단은 “해외 도피 우려가 증명되지 않아 출금 요청이 위법하다. 따라서 출금 처분도 위법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대법원은 “(요청의 요건과 무관하게) 출금 처분의 요건이 갖춰졌느냐에 따라, 그 적법 여부가 가려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원심과 같은 ‘위법’ 결론을 내리면서도 이유는 달리 본 것이다. 한마디로 ‘요청이 위법하므로, 처분도 위법했다’는 게 아니라, ‘요청뿐만 아니라, 처분의 요건이기도 한 도피 우려가 증명되지 않아서 위법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인 셈이다.
법무부는 이런 논리를 근거로, “장관 직권 출금도 가능했기 때문에, 김 전 차관 긴급출금 요청의 절차적 논란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르면, 김 전 차관 긴급출금 사후 승인 역시 ‘요청 요건 미비’는 지엽적 문제일 뿐, 그보다 더 본질적인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치 않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라는 출금 처분의 요건은 충족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판례를 김 전 차관 사례에 곧바로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일단 사안의 성격이 다른 데다, ‘일반적인 출금’과 ‘긴급출금’이라는 차이점도 있는 탓이다. 특히 김 전 차관이 당시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치 않은 사람’이었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법무법인 이공의 양홍석 변호사는 “법문상 ‘피의자’나 ‘수사기관 요청’이라는 조건이 없다 해도, 수사의 주체가 아닌 법무부가 출금 요건을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건 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특히 김 전 차관 관련 논란은 (출금 처분 과정에서 이뤄진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위법 사항이 있는) 형사사건인 만큼, 애초 ‘처분의 적법성’은 핵심 문제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