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 정부 시절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대원들에게 사이버 공간에 정치관여 글을 게시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던 배득식(67) 전 기무사령관이 항소심에선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구회근)는 21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배 전 사령관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배 전 사령관은 2011년 3월부터 약 2년간 기무사 대원들로 구성된 온라인 댓글 공작 조직 ‘스파르타’를 운영하며, ‘여권 지지ㆍ야권 반대’ 내용의 글 2만여건 게시를 지시한 혐의로 2018년 구속기소됐다.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기무사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작성한 아이디(ID) 사용자의 신원정보를 불법 조회하게 하고, 정치관여 글을 웹진 ‘코나스플러스’에 게재하도록 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그의 혐의 가운데 상당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유죄 부분의 대부분을 무죄로 뒤집었다. 먼저 ‘불법 신원조회’ 혐의 가운데 일부가 “공소시효 7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이 내려졌다. 면소는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사면됐을 때 형사소송 절차를 종결시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기무사 대원들에게 정치관여 글을 게시하도록 하고, 웹진을 제작하게 한 데 대해서도 “법리상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기무사 대원들의 직무집행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무담당자(직권남용의 상대방)인 공무원이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한 경우에만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항소심에선 배 전 사령관의 전체 혐의 중 일부 ‘불법 신원조회’만 유죄로 인정된 셈이다.
다만, 항소심은 배 전 사령관의 대부분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따끔한 일침을 남겼다. 재판부는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정치권에서 군을 동원해 정치에 영향을 미친 역사에 대한 반성”이라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대통령과 청와대를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사용자의 신원을 조회해 사생활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