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고액 신용대출에 대해 이자와 함께 원금도 상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대출 수요자들을 중심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은행권에는 기존 대출을 올해 재연장해야 하는 사람이나 소상공인 등 실제 생활자금을 용도로 새로운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신년 업무계획에서 '신용대출 분할상환 추진'을 발표한 이후 시중은행 영업점을 중심으로 관련 질의가 늘어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실제로 일부 지점에 규제 관련해 본인이 적용 대상인지, 언제부터 적용되는지 등을 질문하는 고객들이 꽤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시행 지침이나 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은행에서도 안내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신용대출은 매달 이자만 내다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형태(만기 일시상환)의 상품이 대부분이다. 최대 5년까지 신용대출 기간을 잡을 수 있지만, 보통은 1년짜리 대출을 받은 뒤 만기에 대출 기간을 연장하거나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자산 가치가 현재보다 오를 것이라는 믿는 사람들은 일시상환 신용대출로 목돈을 마련해 투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빚투(빚내서 투자)'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자 금융위는 고액 신용대출의 경우 매달 원금도 의무적으로 상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자산 투자를 위한 대출 수요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연 3% 금리에 1년 만기로 1억원을 대출했을 경우, 이 규제가 적용된다면 매달 835만~858만원가량을 갚아야 한다. 만약 5년 만기로 돈을 빌리더라도 매달 160만~190만원을 내야 해 대출로 빌린 목돈을 장기 투자금으로 활용할 수 없다.
은행권 관계자는 "규제 적용을 시작하면 투자를 목적으로 한 고액 신용대출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신용대출의 일종인 마이너스통장은 해당 규제 적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도를 정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빼 쓰는 방식이라 '분할 상환'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규제 적용 이전에 받은 신용대출에는 소급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장에서는 규제가 구체화되면 적용 직전 신용대출 수요가 크게 몰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당국이 1억원 넘는 신용대출 규제 방안을 발표하자 한 달 만에 신용대출이 13조6,000억원 증가하는 신기록이 세워졌다. '문 닫히기 전에 일단 받아두자'는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구체적인 기준과 지침을 포함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오는 3월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발표 직후 적용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시행 시기를 정할 것"이라며 "구체적 사항은 은행 등 금융권 의견을 고려해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