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주기적으로 지연될 수 있어도 결코 영원히 패배할 수 없다.”
미국의 20대 흑인 여성 시인 어맨다 고먼은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4년 동안 갈라진 미국을 이렇게 보듬었다. 가수 레이디가가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 브로치를 달고 국가를 열창했다. 공화당원 컨트리가수 가스 브룩스는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인종과 정파를 뛰어 넘는 화합을 노래했다. 라틴계 가수 겸 배우 제니퍼 로페스는 스페인어로 “신 아래 정의와 자유, 분열이 없는 하나의 국가”를 부르짖었다.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을 수 놓은 ‘화합과 치유’의 장면들이다.
바이든 시대를 맞이한 첫날, 워싱턴에선 ‘조용한 축제’가 열렸다. 감염병 위기와 무장시위 우려 탓에 떠들썩한 잔치는 없었지만 새로운 미국을 알리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대규모 청중이 모였던 의사당 앞 내셔널몰엔 19만1,500개의 성조기와 미국 50개 주(州) 및 자치령의 깃발이 나부꼈다. 미 전역의 국민을 대표하는 의미였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민들은 집에서 TV를 시청하며 새 대통령을 응원했고 워싱턴 일부 시민은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환호하거나 종을 흔들며 축하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취임식의 화두는 미국과 민주주의였다. 바이든 대통령과 영부인 질 여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세컨드 젠틀맨’ 더글러스 엠호프 모두 자국 브랜드 의상을 차려 입고 연단에 섰다. 최초의 흑인이자 아시아계 여성 부통령에 오른 해리스 부통령은 여성 참정권을 상징하는 보라색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CNN방송은 “보라색은 첫 흑인 여성 하원의원이자 1972년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던 셜리 치솜이 주로 썼던 색”이라고 설명했다.
6일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당시 폭도와 맞섰던 ‘흑인 경찰 영웅’ 유진 굿맨은 이날 해리스 부통령의 경호를 맡기도 했다. WP는 “굿맨은 시위대가 상원 회의장을 습격하지 못하도록 기지를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회 경찰대 2인자로 승진해 이날 취임식에서 상원 경찰 부책임자로 소개됐다. 상원의장을 겸임하는 해리스 부통령 경호를 담당한 이유다.
불상사도 괜한 기우였다. 새 대통령을 맞아 거리는 질서를 되찾았다. 워싱턴에는 2만5,000명의 주방위군 병력이 경찰, 법 집행인력과 함께 철통 경계를 섰지만, 작은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았다. 백악관 인근 거리에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됐고, 바이든 대통령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도 여럿 등장했으나 시민들의 워싱턴 접근이 제한되면서 시내는 텅 비었다. 취임식 직전 누군가가 연방대법원 건물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해 한때 경계수위가 올라갔지만,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비를 서던 한 주방위군은 “임무를 문제 없이 잘 끝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은 안전하게 취임 선서를 마쳤다”는 말로 평화로웠던 취임 행사를 대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