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개 눈 적출 후 인공 눈 넣어…"동물실험 윤리 도마 올라"

입력
2021.01.22 09:00
충북대 수의대 연구팀 논문 '윤리문제' 지적
게재 학술지 논문 재평가 등 이례적 움직임
연구자들 "영국 등에선 연구 승인 안났을 수"


국립대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두고 국내외에서 동물실험 관련 연구 윤리 문제가 불거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연구자들마저 "잔혹하고 불필요하다"고 밝힌 동물실험을 기반으로 한 논문이 국제 사회에서 지적을 받으면서다.

22일 학계에 따르면 최근 개의 안구(눈)를 적출하고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인공 눈을 넣은 내용의 충북대 연구팀 논문을 게재한 세계적 학술지 플로스원이 연구팀의 연구윤리를 문제 삼아 "논문을 재평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논문 재점검 전문 매체 '리트랙션 워치'도 플로스원의 우려와 재평가 상황을 보도했다. 국제 학술계가 국내 대학의 동물실험 윤리 문제를 거론하면서 해당 논문 재점검을 공개적으로 진행한 사례는 이례적이다.

리트랙션 워치는 박경미 충북대 수의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 '3D프린팅을 활용한 맞춤형 개 인공 눈: 예비연구' 에 대해 "많은 독자로부터 연구 윤리 문제와 함께 실험에 사용된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난 15일 보도했다. 이는 플로스원이 앞서 이달 초 "박 교수팀이 개발한 인공 눈이 기존 적출방법보다 임상적으로 유용한지, 또 연구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무 문제가 없는 개를 사용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플로스원은 "편집자들이 논문을 재평가하고 있으며 평가가 나오기 전 우려를 표명하는 입장을 낸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팀의 연구는 비글 개 암수 두 마리의 한쪽 눈을 각각 적출한 뒤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콘택트렌즈 형태의 인공 눈과 안와임플란트(적출 후 빈 곳을 메워주기 위한 이식물)를 넣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실험에 사용된 개는 모두 안락사됐다. 이 논문은 충북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승인을 거쳤고, 플로스원 내부 리뷰를 거쳐 게재됐으나 이후 윤리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의료∙연구 윤리 전문인 한 수의대 교수는 "데이터 오류나 게재 중복 등으로 논문이 취소, 철회되는 경우가 있지만 잦은 일은 아니다"라며 "더욱이 국제 학술지가 연구내용이 아닌 동물실험 과정에서 윤리 문제로 논문 재평가에 들어간 건 이례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연구의 가치에 대해서는 수의 안과 전문의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플로스원 홈페이지에는 △연구 동기가 단순히 미용 용도라면 개 두 마리를 희생시킨 연구방법이 정당화할 수 없다 △실험에 사용된 개에 대해 마취와 진통 관리가 제대로 됐는지 근거가 없다는 등 비판이 제기됐다. 미용 용도에 대한 지적은 박 교수팀의 연구 목적에 '맞춤형 인공 눈이 미적으로도 훌륭하다', '눈이 적출된 개의 얼굴은 아름답지 못하다'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박경미 교수는 한국일보에 이번 연구가 단순히 미적인 부분만을 위한 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교수는 "개 눈을 적출하면서 지금까지 단순 봉합시 혈종이 생기거나 적출한 부분이 함몰될 수 있어 안와임플란트 수술을 해왔다"며 "수술시 실리콘 등을 사용해 왔는데 염증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재료가 기존 재료보다 이물반응과 염증반응이 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추후에는 인체용 의안 개발로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마취와 통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력한 진통제를 수술 후 2주간 사용했다"며 "수술 후 통증 기록은 해당 부위 소독 시 개들이 느끼는 정도에 대해 주관적 평가 기준을 만들어 작성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재료의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만큼 보호자가 있는 개를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국내외에서 동물실험 관련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걸 느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실험 계획 전 윤리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수의학계와 동물단체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보다 철저히 운영되는 분위기가 확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설치된 386개 기관에서 3만9,244건의 계획을 심의했지만 미승인 비율은 0.6%에 불과하다.

영국 에든버러대 수의과대학에서 동물복지를 전공한 최태규 서울대 박사과정 연구원은 "문제가 된 연구가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통과했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위원회가 실험 윤리에 대한 판단 보다 내부 승인을 위한 기관처럼 운영되고 있다"며 "영국 등에서는 이번 실험에 대해 승인이 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자들이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려는 갈망이 크다"며 "이번 연구는 멀쩡한 개의 눈을 적출해야 했는데, 실제 연구결과가 개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고통스러운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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