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도 없는데 광고까지 가리라니" 속 앓는 편의점-담배업계

입력
2021.01.21 07:00
20면
정부, 6월부터 담배광고 외부 노출 단속 예정
유리창에 시트지 붙이고 특수 필름 동원
"유인상품 차단으로 편의점 매출 감소 불가피"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던 법이 10년 만에 돌아온 거죠."
A편의점 본사 직원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 본사의 직원 중 서울 양천구와 노원구 점포 담당자는 요즘 '특별한 실험'을 하고 있다. 편의점 점포 바깥에서 내부 계산대 근처에 붙어있는 담배 광고물이 보이는지, 보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가려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편의점을 비롯해 담배소매점 내부의 담배 광고가 매장 바깥에서 보여선 안 된다는 국민건강증진법 9조를 위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사실 이 조항은 2011년 도입됐지만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된 단속이 이뤄지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그런데 정부가 금연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오는 6월부터 본격적으로 현장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기로 했다. 편의점 점주와 본사, 담배 제조사 등이 최근 담배 광고물 외부 노출 차단 방식을 정하고 현실화를 추진 중이지만 공식적인 기준이 없어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수필름·시트지 동원된 '담배 가리기'

20일 업계에 따르면 담배 제조사들이 소속된 한국담배협회와 편의점 등은 내주부터 학교, 학원 등이 많은 양천구와 노원구 지역 편의점 프랜차이즈당 10개 점포씩 담배 광고 가리개 설치 테스트를 진행한다. 외부 노출 차단 효과가 확인되면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통상 편의점은 계산대 근처에 담배 진열대가 있고 그 주변에 다양한 광고가 붙어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 광고물이 매장에서 1, 2m 떨어진 바깥에서 식별되면 안 된다. 무분별한 광고 노출이 청소년이나 일반 소비자 흡연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거나 1년 이내 영업정지 처분도 받을 수 있다.

편의점 대부분은 투명한 통유리로 돼 있다. 사실상 전국 5만여 곳 모두 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2018년과 2019년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편의점의 담배 광고 외부 노출 비율은 93%에 달했다. 슈퍼마켓 등을 포함한 전체 담배 소매점의 위반 비율은 2018년 72%에서 2019년 77.4%로 더 올라갔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1일부터 단속을 시작하려 했지만 업계 반발과 현실 적용의 어려움 등으로 6월로 유예했다. 6월 단속 시행이 결정된 건 광고를 가리는 방식에 대한 합의가 최근에서야 이뤄졌기 때문이다.

편의점과 담배업계는 측면에선 까맣게 보이고 정면에 서야만 온전히 볼 수 있는 편광필름을 담배 광고판 위에 덧붙이거나, 통유리창에 불투명한 시트지를 바르기로 했다. 이달 말까지 이 방식으로 복지부 최종 점검을 받은 뒤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단속원 키·각도 따라 달라… 광고비 갈등도

문제는 필름과 시트지 주문 및 시공 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일단 관찰자 키, 바라보는 각도 등 변수가 적지 않은데다 편의점 설계와 광고판 모양도 제각각이라 규격화가 불가능하다.

비용 분담 주체도 확실하지 않다. 담배업계에 따르면 담배 제조사가 부담하기로 정해졌지만 회사별 비율은 더 논의해야 한다. 자사 광고판에 필름을 붙이는 건 갈등 소지가 없어도 유리창 시트지는 모호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편의점 점포주들은 담배회사로부터 광고판 설치 대가로 보통 월 30만~60만원의 광고비를 받고 있다. 담배회사는 광고 노출 효과를 줄이는데 추가 비용을 내는 셈이라 결국 광고 단가 인하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급감한 대학가, 유흥가 등의 점포에선 광고비 감소 타격이 적지 않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담배 마진은 7~9%로 적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로 일종의 '미끼' 상품이고 점주 입장에선 광고비는 중요한 부가 수익"이라며 "코로나19로 장사가 잘 안 되는 와중에 매장 안으로 들어오게끔 만드는 창구를 차단하고 광고라는 정기 수익 감소 타격까지 예상돼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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