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떠나야만 하게 됐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광야로 떠납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0일 사의를 표명하고 아침 직원들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말에선 다음 행보를 가늠케 했다. 2019년 4월 8일 중기부 장관에 취임한 지 1년 9개월(654일) 만의 퇴임이다. 박 장관은 이날 오전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화상회의를, 오후엔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중기부 확대간부회의를 마지막 일정으로 소화하고, 본격적인 서울시장 보궐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후임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정됐다.
박 장관은 “중기부는 디지털경제로의 대전환-스마트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부처로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며 “때론 질주영선, 버럭영선을 꾹 참고 따라와 주신 직원 여러분께 뜨거운 사랑을 보낸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재임 기간 동안 중기부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다양한 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예산이 급격히 증가했다. 박 장귄 취임 전 책정된 2019년 중기부 예산은 10조3,000억원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중기부 예산은 13조4,000억원으로 30% 이상 늘었고, 올해는 16조8,000억원까지 확보했다. 중기부 안팎에서는 박 장관 부임 이후 중기부의 위상이 크게 오르면서 예산 확보가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박 장관은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자발적 협력과 상생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자신의 1호 정책인 ‘자상한기업’(자발적 상생·협력기업)’ 프로젝트는 대기업이 가진 기술과 인프라를 소상공인·중소기업과 공유하는 제도다. 현재 삼성전자, 현대차·기아, 포스코, 네이버, 우아한형제들 등 26개 대기업이 자상한기업으로 선정돼 중소기업들과 상생을 이어가고 있다. 또 우리나라를 ‘벤처 4대 강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가동한 ‘K-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 프로젝트’는 국내 벤처·스타트업 활성화에 기여했다. 아울러 중소기업 제품의 브랜드화와 해외진출을 위한 ‘브랜드K’, 소상공인 활성화를 위한 ‘가치삽시다’ 등 정책을 마련하며 활발한 정책 활동도 벌였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 발 빠른 지원에 나선 것도 긍정적이다. 지난해 2차에 이어 올해 초 3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자금을 집행했다. 사전에 지원 대상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신청 절차 간소화 등의 준비를 거쳐 신청 3~4시간 만에 현금을 지급한 것이다. 그 결과 단 3일 만에 1차 지급 대상자의 85%에 지급을 완료했다.
박 장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경제 화두로 ‘프로토콜 경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프로토콜 경제는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경제로, 수익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이 핵심이다. 여러 대상을 한 곳으로 모으는 ‘플랫폼 경제’와는 대비돼 불공정, 독점화를 방지할 수 있는 차세대 경제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박 장관의 이와 같은 성과는 중기부 직원들의 신임으로 이어졌다. 중기부 공무원 노동조합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중기부 공무원 10명 중 7명은 ‘계속 함께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직원들로부터 △리더십(만족도 82.5%) △업무능력(77.1%) △인간관계(64%) △유연성(61.6%) △조직·인사운영(44.6%) 등 모든 평가 영역에서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