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첩 영웅 이민성 “그 때의 희열, 대전에서 재현”

입력
2021.01.20 15:41
22면

편집자주

2021 시즌 준비를 위해 국내에서 구슬땀 흘리는 K리그 구성원들의 다짐과 목표, 그리고 팬들을 향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1997년 9월 일본 도쿄국립경기장. 이듬해 열릴 프랑스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다투는 숙명의 한일전에서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탄생했다. 후반 20분 야마구치 모토히로(52)의 선제골로 패색 짙던 한국은 후반 38분 서정원(51)의 헤딩 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놨고, 3분뒤인 41분 극적인 역전골이 터졌다. 주인공은 수비수 이민성(48). 약 30m 거리에서 낮게 찬 중거리 슛이 한차례 땅에 튄 뒤 시원하게 일본의 골 문을 갈랐다. 한일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로 꼽히는 이날의 역전극은 축구팬들에게 ‘도쿄대첩’으로 기억되고 있다.

도쿄대첩의 영웅 이민성은 올해 K리그2(2부리그)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을 맡아 프로 무대 사령탑으로 데뷔한다. 대전 동계 전지훈련지인 경남 거제시에서 만난 이 감독은 “코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책임감이 생겼다”며 “과거 이장수, 김학범 감독님께 배운 노하우를 통해 균형과 타이밍, 스피드까지 3박자를 갖춘 역동적인 축구를 선보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공을 뺏으면 7초 안에 슈팅을, 뺏긴다면 5초 안에 뺏을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며 “공수전환 속도만큼은 가장 빠른 팀이 된다면 1위는 자연히 따라오게 될 결과”라고 했다.


‘감독 이민성’에게 떨어진 부임 초반 과제가 많았다. 기업구단으로 변모한 첫해였던 2020 시즌에 팀은 4위에 그치며 투자 대비 성과가 너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선수들 사기는 바닥을 쳤고, 전체적인 체력관리도 안 돼 있는 모습이었다. 이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강도 높은 훈련이 불가피했다”면서도 “선수들이 밥 먹을 때도 대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훈련 외 시간엔 경직되지 않도록 코칭스태프들이 먼저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새 감독의 고강도 체력훈련에 혀를 내두른다는 후문. 이 감독은 “내가 구사하는 축구는 선수들의 체력이 완성돼 있어야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대표팀 시절엔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K리그 FC서울에선 터키 출신 세뇰 귀네슈 밑에서 몸소 느낀 체력의 중요성을 전수하는 과정이다. 그는 “귀네슈 감독님 밑에서 하루에 두 번씩, 무려 40일동안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한 기억이 또렷하다”며 “내가 ‘죽겠다’고 투덜거리면 귀네슈 감독은 ‘죽지 않을 정도만 훈련할 것’이라며 웃었는데, 실제로 팀이 강해지는 걸 보며 많은 걸 느꼈다”고 했다.


그의 프로팀 감독 데뷔 시즌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K리그2 구단들이 저마다 K리그1(1부리그) 못지 않은 선수 보강을 하고, 감독들의 지도 철학도 점점 뚜렷해지면서다. 이 감독은 “K리그2 구단 전력이 전체적으로 강해지는 건 승격을 노리는 팀들에겐 서로 부담인 건 사실”이라면서도 “오히려 독주하는 팀 없이 경쟁 팀들이 서로 물고 물리는 치열한 전개가 리그 흥행엔 더 큰 흥미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스트레스는 스스로 감내하되, 결국 마지막에 웃고 싶단 얘기다.

2002 한일월드컵 직후 몇 년 동안은 팬들의 열기가 워낙 뜨거워 ‘축구특별시’로 불린 대전의 부활도 과제다. 특히 지난해까지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에서 함께 코치로 생활한 김은중(42)이 대전에서 프로에 데뷔한 데다 여전히 애정이 많아 “꼭 대전을 승격시켜달라”는 부탁도 받았단다. 이 감독은 “대전 감독을 맡는 동안 이루고 싶은 가장 큰 목표는 당연히 승격”이라면서 “이제 도쿄대첩 등 과거의 성과보다 감독으로서의 성과가 중요하기에 선수들과 신뢰를 쌓아 꼭 과거의 열기를 되찾고 싶다”고 했다.

거제 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