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53)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가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면서, 전직 대통령들과 삼성그룹이 연루된 과거 ‘비자금 조성 및 뇌물 공여’ 방법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2019년 12월 “향후 정치권력자의 뇌물 요구를 거절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답변을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이재용 부회장은 준법위 설치로 응답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날 준법위에 대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선제적 위험 예방 및 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준법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보완할 부분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하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선 비자금 조성에 대한 실효적 감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삼성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을 예로 들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사면을 대가로 2008~2011년 이 전 대통령과 다스가 납부해야 할 미국 소송비 89억원을 대납한 바 있다.
재판부는 “1,000만원 이상의 대외후원금 지출과 관련해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안건으로 부의해 심의를 거치도록 돼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정치권력에 대한 뇌물제공 위험이 어느 정도 차단될 순 있다”면서도 “이 전 대통령 뇌물공여 사건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정치권력에 대한 뇌물제공은 허위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외관을 가장해 이뤄질 수 있어, 대외후원금 지출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것만으론 충분한 대응수단이 마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삼성이 비자금 조성이나 뇌물공여 방식을 과거 사례를 통해 스스로 파악해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과거 (삼성의)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방법을 삼성 측이 스스로 분석해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