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상청의 예보를 넘어서는 폭설이나 기습 한파가 연달아 불어닥치며 일상이 적잖이 흔들렸다. 꽉 막힌 퇴근길에 귀가 대신 호텔 숙박을 선택한 직장인이 속출했고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앱)들은 배달을 중단했다. 주요 전자상거래(e커머스) 업체들은 새벽배송이 지연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늑장 제설'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날씨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 또 다른 업종은 홈쇼핑이다. 계절 변화에 민감한 패션 등이 주력 상품이고 생방송 비중이 커 날씨 예측률이 높아야 편성표를 미리 짤 수 있기 때문이다. 폭설과 기습 한파가 잇따르자 이런 홈쇼핑 업계의 날씨 예측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특히 IBM과 계약해 정교한 자료를 미리 받아 온 롯데홈쇼핑의 경우 연초의 갑작스러운 혹한 예측이 적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이달 둘째 주와 셋째 주 방송 품목을 겨울침구, 온수매트 등 난방상품을 비롯해 겨울 내의, 코트 위주로 바꿨다. 평년과는 다른 혹한이 온다는 예측에 기반한 긴급 편성이었다.
예측은 들어맞았다. 예보를 넘어선 폭설이 내린 지난 12일 롯데홈쇼핑은 침구와 양모코트, 패딩코트, 기모팬츠 등을 판매했다. 침구세트는 3,000세트 이상, 외투는 각 상품이 2,500세트 이상 팔려나갔다. 앞서 8일에도 두꺼운 외투로 상품을 구성해 상품당 6,500~1만세트의 판매고를 올렸다.
홈쇼핑 업체들은 통상 상품 편성을 방송 2주 전에 마친다. 제조사 등 파트너사와 협의해 상품 구성과 가격을 결정하고 물량을 미리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 14일 뒤 날씨를 정확히 알고 있는 업체가 잘 팔릴 상품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구조다.
보통 홈쇼핑사들은 기상청이나 민간 기상업체의 정보를 활용하는데, 대부분 단기 예보 데이터와 상품기획자 경험에 의존한다. 단기 예보는 10일 단위라 1월 초에는 '1월 중순 온도 영하 15도' 수준만 알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예측 기간과 날씨 정보가 세분화돼 있지 않아 이상 현상이 생기면 예보만 믿고 잔뜩 주문해 둔 패딩 수량이 남아 재고 부담을 떠안는 셈이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7월 IBM과 협약을 맺었다. IBM의 경우 2016년 당시 2조원을 들여 미국 최대 날씨정보 업체 웨더컴퍼니를 인수한 뒤부터 날씨 예측 시스템을 고도화해 전 세계 다양한 유통사에 이 정보를 팔고 있다. 현 시점으로부터 6개월 뒤까지 해당 지역 매일의 최고, 최저, 평균 기온 및 강수량을 예측한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IBM 예측값이 굉장히 섬세하고 정확도가 높다"며 "6개월 이내 몇월 며칠 기온이 얼마인지 집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7~9월 역대급으로 길었던 장마와 태풍도 예상해 롯데홈쇼핑은 제습기, 의류건조기 물량을 늘려 편성했다. 그 결과 전년 동기 대비 주문 수량이 제습기는 113%, 건조기는 120% 늘었고, 상품별로 주문금액은 3억~5억원을 기록했다. 목표 대비 150~300% 초과 달성이다.
최근 들어 이상 기후나 급격한 계절 변화 등 기상 불확실성이 커져 날씨 데이터에 기반한 유통업계 경영 관리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밭 단위로 계약하는 감자, 당근 등은 파종 시기를 조정할 수 있어 폭염, 장마 등을 비껴가도록 한다. 현대홈쇼핑은 2019년부터 민간 업체 웨더아이로부터 주간과 장기(6개월) 날씨 정보를 받아 방송 편성에 활용하고 있다.
녹화 영상으로 홈쇼핑 서비스를 제공하는 SK스토아 관계자는 "지금은 기상청으로부터 5개 지역으로 나눠 데이터를 받으면서 어떤 날씨에 어떤 물건이 잘 팔렸는지 분석하는 단계"라며 "데이터가 점차 쌓이고 있어 날씨 예측을 조금씩 편성에 반영하는 테스트를 해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