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18일 국회 시정방침연설에서 한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또 주변국 외교정책을 설명하면서 한국을 가장 후순위에 배치했다. 한일 간 최대현안인 강제동원 문제를 놓고 앞서 8일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사법부 판결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날 신년 기자회견이 무색하게, 양국관계 회복 문제를 전적으로 한국이 해결해야 한다고 책임을 넘긴 것이다.
스가 총리는 이날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국가다. 현재 양국관계는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며 "건전한 관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우리나라(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근거해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한국이 관계 개선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근린(주변국) 외교정책을 설명할 때는 북한, 중국, 러시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다음으로 한국을 언급했다. 시정연설은 연초 정기국회 개원에 맞춰 총리가 1년 동안 국정 방침을 설명하는 자리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스가 총리로서는 이번이 첫 시정연설이다.
스가 총리는 지난해 10월 임시국회 개원 당시 소신표명연설에서는 한국을 “매우 중요한 이웃국가”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중요한 이웃국가”로 낮췄다. 지난해 1월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시정연설에서는 근린 외교정책과 관련해 북한, 한국, 러시아, 중국 순으로 설명했다. 이에 비해 스가 총리는 한국을 가장 마지막에 배치하면서 중요성을 축소한 것이다.
총리의 시정연설에서 ‘한국 홀대’는 처음이 아니다. 양국 간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의도적인 ‘한국 패싱’이 반복돼 왔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12월 한일 레이더 갈등 직후였던 2019년 1월 시정연설이 대표적 사례다. 아베 총리는 한국을 대북관계 개선에 필요한 여러 국가 중 하나로 거론했을 뿐 근린 외교정책과 관련해 한국을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한국을 “원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라고 규정했다. 시정연설 한 달여 전인 2019년 12월 개최된 문 대통령과 15개월 만의 한일 정상회담을 의식한 유화 제스처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당시에도 ‘원래’라는 과거형 표현을 강조한 것으로, 강제동원 해결과 관련한 일본 측의 입장 변화는 전혀 없었다.
스가 총리는 이날 외교·안보정책의 기축이 미일동맹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미일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 및 국제 사회의 평화, 반영, 자유의 기반이 된다"며 미일동맹을 기반한 억지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아세안, 호주, 인도, 유럽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도 협력해 법의 지배에 의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목표로 제시했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일본인 납치 문제는 정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조건을 붙이지 않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하겠다는 결의"라며 아베 정권의 대북외교 노선을 계승할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