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잇따른 완성차 업계 진출로 세계 자동차 생태계에도 판도변화가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18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표한 ‘빅테크발 자동차 생태계 변화 가시화’ 보고서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 일본,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완성차 시장 진입을 공언하면서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 파괴적 변화가 점쳐진다.
선두주자는 글로벌 기업인 애플이다. 2014년부터 ‘타이탄’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애플은 자율주행 전기차를 2024년 출시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내놓았다. ‘애플카(가칭)’는 애플이 자체 개발한 ‘모노셀’ 배터리, 반도체, 라이다(센서)를 장착해 ‘테슬라’보다 뛰어난 성능을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은 높은 품질의 양산을 위해 현대자동차그룹, 중국 지리자동차 등과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일본의 소니는 올해 열린 소비자가전박람회 'CES 2021’에서 자율주행 전기차 ‘비전S’의 프로토 타입 주행 영상을 공개했다. 비전S는 소니의 이미지센서, 차량용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커넥티비티 등의 부품이 장착된다. 자율주행 기술은 유럽 자율주행 기술기업인 ‘AI모티브’ 측과 협력해서 개발 중이다. 전기차 주요 부품과 조립은 세계 3위 부품기업인 ‘마그나’가 제공했다. 마그나는 최근 LG전자와 전기차 부품 합작사(JV) 설립을 공헌한 곳으로, 향후 LG의 부품 공급도 기대된다.
중국 빅테크 기업인 바이두의 경우엔 올해부터 지난 11일 지리차와 합작해 ‘바이두자동차’를 설립하고 전기차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바이두의 가장 큰 강점은 2017년부터 진행해온 ‘아폴로’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하는 자율주행 분야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다임러, 현대차, 포드, 보쉬,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전세계 130여개 업체와 1만2,000명 이상의 개발자가 함께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율주행 플랫폼이다.
완성차 업체 측에서 빅테크 기업에 협력을 제안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로봇 스타트업 ‘보스톤 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향후 로봇의 인공지능(AI), 제어 등의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모빌리티를 개발할 계획이다. 미국 자동차 업체인 ‘GM’은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해 1,000㎞ 주행 가능한 ‘얼티움 배터리’를 개발했다. 도요타는 일본 빅테크 기업인 소프트뱅크와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와 자율주행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자동차연구원은 빅테크와 완성차업계가 협력과 경쟁을 반복하면서 자동차 산업이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플랫폼에 생산·통합 기능으로 3분할 될 것으로 분석했다. 기존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들은 파워트레인과 섀시, 차체 등을 설계·제공하고, 빅테크들은 자율주행 기능과 응용 서비스 구현을 위한 SW 제공에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HW·SW 플랫폼을 통합해 완성차를 생산하는 기능은 기존 완성차 업체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이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빅테크 업체들이 자본 조달력, 브랜드 인지도, 개발·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는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완성차 시장에 진출해 기존 산업 구조에 파괴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는 테슬라가 전기차 분야에서 완성차 업체들을 압도하며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입증됐다.
이호중 자동차연구원 연구전략본부 책임연구원은 “미래 자동차 산업은 빅테크, 완성차업계, OEM 기업이 플랫폼 제공자로 거듭나기 위해 협력과 경쟁을 지속할 것”이라며 “빅테크는 소프트웨어 역량을 토대로 자율주행차 개발과 출시를 위해 완성차 업계와 협력하겠지만, 어느 정도 소프트웨어 플랫폼 지배력이 커지면 하드웨어 플랫폼 제공 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자 할 것이고, 완성차 업계는 IT 역량 내재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