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5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공식 인정한 법원의 판결에 이틀째 침묵했다.
그간 민주당은 ‘선(先) 사실 관계 확인→후(後) 입장 표명’ 원칙을 앞세워 언급을 피했다. 14일 법원 판결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는데도 민주당은 입장을 내지 않았다. 민주당의 성인지 감수성과 피해자 중심주의가 대상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당의 공식 입장 표명도 없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비공개 최고위에서도 법원 판결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며 “고인에 대해 추가로 논평을 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아 앞으로도 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호한 태도를 취해 왔다. 지난해 7월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을 때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일부 의원들은 “(피해자 측의 성추행 주장은) 언어 상징 조작”, “박 전 시장을 가해자로 기정사실화 하는 건 사자(死者) 명예훼손” 같은 발언으로 2차 가해 경계를 넘나들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선 피해자를 지원하는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의 참고인 채택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그런 민주당의 침묵은 정당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가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판결하면서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지난해 5월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증언한 박 전 시장의 지속적이고도 강도 높은 성추행 가해 사실도 공개했다.
민주당은 보수 진영에서 성추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맹공’을 퍼부었다. 2006년 한나라당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2012년 김형태 전 새누리당(옛 국민의힘) 의원의 성추행 의혹 때 “의원직 사퇴” 등을 요구하며 비판했다. 2018년 서지현 검사가 ‘미투’로 검찰 조직을 겨냥했을 땐 피해자 중심주의를 선언하며 지지를 선언했다. 최근엔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의 여비서 성폭행 의혹이 불거지자 국민의힘의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진보 진영의 거물이자 민주당 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된 박 전 시장 성추문엔 고개를 돌렸다. 민주당의 정략적 침묵은 여권이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 일부에서 해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14일 법원 판결 이후에도 2차 가해는 멈추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역공에 나섰다.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5일 “민주당이 애써 감추려던 박 전 시장 성추행의 실체적 진실이 5개월 만에 드러났다”며 “지금이라도 서울시장 무공천을 선언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의원도 “민주당은 조직적인 2차 가해까지 서슴지 않았다”며 “양심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으면 피해자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