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역학조사관들은 허탈한 심정을 드러내며 법원의 판결에 의문을 제기했다.
집단감염의 경우 명단 제출 여부가 방역 활동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만큼 법원의 판단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무엇보다 BTJ열방센터 등 종교단체발(發) 집단 감염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자칫 방역 활동을 방해하고 검사를 받지 않는 이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원지법 형사11부(김미경 부장판사)는 앞서 13일 선고 공판에서 "방역당국이 신천지 측에 시설 현황과 교인 명단 제출을 요구한 것은 역학조사라고 볼 수 없다"며 "역학조사 자체라기보다는 자료 수집 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두고, 일부 자료를 누락했다고 해서 방역 활동 방해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역학조사관으로 활동하는 조준휘 광주시 감염관리지원단 주임연구원은 1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역학조사란 정의나 지침에서 접근해서 본다면 무죄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발생 규모나 환자, 인적 사항, 발병일 등을 빨리 확인해 인과 관계를 따지려면 명단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 연구원은 심층역학조사팀에서 활동하며 확진자의 동선과 감염원을 파악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이어 "실제 QR코드나 방문자 목록을 작성하게 하는 것도 역학조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권고하는 것"이라며 "명단을 빨리 확보해야 접촉자를 빠르게 분류하고 추가적인 전파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법원에서) 이게 역학조사의 일환이 아니라고 한 건 조금 힘 빠지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조 연구위원은 이번 판결을 악용해 명단 제출을 거부하거나 역학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저희가 역학조사를 하다 보면 심층 인터뷰를 하는데 오히려 감염병 예방법이나 관련 지침을 미리 숙지하고 있으신 분들도 계신다"며 "집단적으로 감염이 발생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지침이 이렇다고 알려준다"며 "'내가 왜 이걸 협조해야 하느냐', '내가 여기까지 협조해야 할 의무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금 우려스러운 건 명단을 꼭 줘야 하느냐며 악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거짓 동선을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진위 여부를 가리기가 되게 어렵고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함께 출연한 경기도 역학조사관으로 활동하는 A씨(익명 요구)도 "무죄 판결 이유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며 "역학조사관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현장에 가서 자료 요청을 드리면 (명단 등) 관련 자료를 준비해 주시는데, 그런 과정 자체가 역학조사의 한 단계"라고 설명했다.
A씨는 지난해 신천지발 1차 유행 때 명단 확보가 감염자 확산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법원의 판결을 반박했다. 그는 "당시 특성상 교인이 많았고 같이 모여 사는 소규모 시설이 많아 검사를 진행할수록 확인되지 않은 소규모 그룹이 많이 발견됐다"며 "협조를 잘 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언론에 신천지가 강조될수록 숨는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명단 파악이 굉장히 중요했다"며 "시설 현황 같은 게 역학조사를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A씨는 역학조사를 하다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결과를 받는 분들이 조사관들을 공격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본인이 익명으로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다.
그는 "조사관의 연락처랑 이름을 서로 공유해 악성 전화나 문자를 계속 보내신다"며 "심한 욕을 많이 하고 가족을 협박하거나 악성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