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韓 동결자금으로 구급차 구매 제안 거절”

입력
2021.01.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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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결 해제 허가 받아오겠다고 했다”


이란 정부가 한국 시중은행에 동결된 수십억달러 규모의 이란중앙은행 자금으로 구급차를 구매해 보내겠다는 한국 정부의 제안에 퇴짜를 놨다. 단순히 일부 의료 물품을 지원받는 차원이 아니라, 동결 자금 해제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반면 우리 정부는 "구급차 구매는 이란 측의 희망"이라고 반박하면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이란 정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은 테헤란에서 열린 국무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국이 이란 동결자금과 구급차를 교환하자고 했지만, 제안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바에지 실장은 “우리는 (미국의) 경제 전쟁과 압박에 맞서 지난 3년간 국가를 운영했다”며 “구급차 몇 대가 필요한 게 아니라 한국에 동결돼 있고, 반드시 (동결) 해제가 돼야 하는 자금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의 이란 방문을 두고, 이란 외무부와 중앙은행이 한국정부를 압박해 이미 지난달 결정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최 차관 등 정부 대표단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억류된 선박과 선원들의 석방 교섭을 위해 지난 10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이란을 찾았는데, 이란 측은 이 사안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마흐무드 헤크마트니아 이란 법무부 차관 역시 12일 최 차관을 만나 “한국 선박 나포는 기술적 문제”라며 “법적인 사안은 (이란) 사법부가 다루게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에지 실장의 언급으로 미뤄보면, 최 차관은 이란 정부 관계자와 만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약품과 의료 장비 등 인도적 물품을 보내고 그 금액만큼 이란의 동결자금을 상계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적 물품을 이란과 거래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미국의 대이란 제재 중 예외가 인정된다. 다만 동결자금 사용의 경우 미국과 사전 협의가 필요할 수 있다.

바에지 실장은 “한국 대표단은 돌아가 이란 동결 자산을 해제하기 위해 (미국의) 허가를 받기로 했다”고 주장하며, "이란 정부는 한국이 동결자금을 해제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법적 조치를 위한 예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는 구급차 구매와 관련한 협의 자체는 인정했지만, 애당초 이란이 희망해 왔던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구급차 도입 관련 (이란과의) 협의가 있었다"면서도 "최 차관이 제안했다고 한 이란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이란 측이 희망해왔다"고 반박했다.

최 차관은 이란 방문 기간 세이에드 압바스 아락치 외교부 차관의 한국 답방도 요청했다. 이에 아락치 차관은 여건이 되는대로 한국을 찾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동결 자금 문제에 대한 양측 간 이견이 큰 데다 이란에 억류된 한국케미호 조기 석방 교섭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 이란 고위 관계자의 방한이 단기간 내 이뤄지긴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에는 약 70억 달러(7조8,000억원)에 달하는 이란 석유 수출대금이 예치됐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2018년 5월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고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대상에 올리면서 이 계좌의 운용은 중단된 상태다.

허경주 기자
조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