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아니 청출어람이다. 강경파로 유명한 아버지 딕 체니 전 부통령보다 그의 정치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첫째 딸 리즈 체니가 더 대쪽 같다. 13일(현지시간) 하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 10명 가운데 맨 앞자리에 바로 딸 체니가 있다. 체니가 전면에 나서면서 민주당의 탄핵안도 추진력을 얻었다는 게 미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다. CNN방송은 이런 그에게 “공화당의 양심”이라고 했다. 체니는 공화당 하원 의원총회 의장으로 당내 서열 3위다.
당 지도부의 반란 아닌 반란에 공화당은 내분에 휩싸였다. 체니에겐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초강경 우파 의원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는 이날 체니를 의원총회 의장 자리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특별회의 소집 청원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입수한 청원서엔 “체니가 공화당 의원총회 대다수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아 당을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불화를 조장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것이 당내에선 여전히 정치적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그러나 체니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는 아무데도 안 간다”며 자리에서 내려올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이건 양심에 따른 투표”라고 못박았다. 역시 탄핵에 찬성한 존 캣코 하원의원은 이날 체니 지지 의사를 밝히며 그의 퇴진을 막아야 한다는 서한을 동료들에게 발송했다. 매체에 따르면 체니는 사석에서 동료들에게 “역사의 옳은 편에 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폭도들을 불러모으고, 결집시키고, 공격의 불길을 당겼다”며 “미국에 돌이킬 수 없는 배신 행위를 저질렀다”고 규탄했다.
이로써 체니가(家)는 트럼프 대통령과 완전히 갈라섰다. 앞서 아버지 체니 전 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 날을 세웠다. 이달 초 전직 국방장관 10명 공동 명의로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문을 보내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선결과에 승복하라고 비판하면서다. 아버지 체니는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 아래서 국방장관을 지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부통령으로 공화당의 강경 외교안보 기조를 주도했다. 딸은 아버지의 지역구인 와이오밍주(州)에서 2016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정치적으론 아버지보다 더한 강경 보수라는 평도 나오는데, 여동생 메리가 동성애자임에도 동성결혼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론자가 당내 반발에 흔들릴 리 없다. 그동안 외교정책과 국가안보 문제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수차례 몰아세웠다. 6일 대통령 선거결과 인증을 위한 상ㆍ하원 합동회의가 열리기 전에는 당내에서 선거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면서 조 바이든 당선인을 거부하는 것이 왜 위헌인지 설명하는 12페이지 분량 글을 동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번 탄핵 문제를 두고도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총무 스티브 스컬리스와 줄곧 대립각을 세웠다.
공화당 지도부는 풍비박산 직전이다. 한 공화당 의원은 “매카시와 스컬리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불복을 지지하고, 체니는 헌법상 문제가 있는 탄핵을 지지했다”며 “공화당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도 “체니를 지지하지만 공화당 다수가 그를 지도부에서 축출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지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칩 로이 하원의원은 탄핵에 반대했음에도 “체니가 헌법을 수호하고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것은 비난이 아닌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댄 크랜쇼 하원의원도 “체니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지도부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