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연 날리며 빌고 싶은 한가지 소원... '코로나19 끝!'

입력
2021.01.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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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액영복(送厄迎福)': 액운을 보내고 복을 기원한다

새해를 전후해 날리는 연은 '액막이연'이라고도 부른다. 송액영복을 연에 적어 하늘 높이 날려보내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연날리기는 일종의 민속신앙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월 대보름쯤이면 너도나도 동네 언덕이며 하천 둔치에 모여 연을 날리는 모습이 과거에 흔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 지금 한 조각 방패연에 바이러스를 실어 영영 떠나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 역사에 걸쳐 민초들이 의지해 온 풍습이자 아이들에겐 훌륭한 장난감이기도 했던 연날리기 장면을 이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연의 효용 가치가 급격히 퇴색한 탓이다. 존재의 기억조차 잊혀가는 지금 전통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리기태 명장(한국연협회 회장)을 만났다.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체육문화회관. 리 명장은 자신의 승합차에 싣고 온 100여 종류의 방패연을 '방패연 모양'으로 바닥에 늘어놓았다. 리 명장은 창호지에 댓살을 붙여 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직도 소가죽을 중온수에 끓여 만든 아교나 민어 부레를 이용한 어교, 조개껍데기를 갈아 만든 물감 등 천연재료를 고집한다. 조부 이천석 옹과 부친 이용안 옹에 이어 3대 째 이어오는 조선시대 전통 방패연 제작 원형 기법이다.

이날 그가 선보인 연들은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통 연 제작자 및 민화 작가로부터 기증을 받거나 공모를 통해 모은 민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에는 해, 달, 새, 꽃과 같은 자연을 비롯해 용이나 봉황 등 상상 속 존재까지 담았다. 리 명장은 이를 두고 "오직 바람에 의해서만 하늘을 나는 연의 자연친화적인 면모"라고 설명했다.





현대 문명에 밀려 점점 사라져 가는 연날리기의 전통을 잇기 위해 리 명장은 다양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지난 3일 소의 해를 맞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대형 황소연과 봉황 줄연 등 150여개의 연을 날려 코로나19 퇴치를 기원한 것을 비롯해, 전국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호를 따서 고안한 '초양법'으로 손쉽게 연을 만들고 날리는 방법을 미래 세대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영국 왕실 식물원에서 보관 중인 가장 오래된 한국 전통 연 '한성연'을 복원하고, 지난해 1월엔 인도에서 열린 국제 연축제에도 참가하는 등 한국 전통연의 개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한국의 전통 연은 크게 방패연과 가오리연 두 종류로 나뉜다. 보통 가운데 둥근 구멍이 있는 장방형 연을 방패연이라 하는데, 정확하게는 구멍이 없는 네모난 연이 방패연이고 중앙에 구멍이 있는 것은 방구멍연이다. 형태나 무늬에 따라 나누자면, 꼭지연, 반달연, 치마연, 동이연, 초연, 박이연, 발연 7종류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날리는 목적이나 기능에 따라 70여 종류가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부모나 조부모가 사망한 경우 연 몸체에 아무 무늬도 없는 하얀색 연을 날려 고인의 명복을 빌었는데, 이를 상주연이라고 불렀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인류는 다양한 목적으로 연을 만들어 날렸다. 기원전 5세기 중국에선 연을 날린 후 연줄의 길이로 거리를 어림 측정하기도 했고, 삼국사기에는 서기 647년 반란 진압에 나선 김유신 장군이 불붙은 연으로 적군을 교란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전통연의 계승은 리 명장 평생의 소원이기도 하다. 그는 "연 박물관을 만들어 소장하고 있는 연을 모두 기증하는 방식으로 후손에게 전통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촬영에 응한 박인순 삼익타운 대표는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으로 연날리기를 계속하고 있다”며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전 국민이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40년 이상 연을 날린 전문가이자 리 명장의 제자다.

촬영을 마치고 헤어지기 전 리 명장이 연을 날려 소원을 이루는 비법을 소개했다. “연을 날릴 때는 가장 간절한 소원 하나만 비세요. 그럼 반드시 성취됩니다.”





홍인기 기자